한영희의 시들은 온통 세상이 멍들어 있는 시간 속 시름과 좌절의 좌표들이 점점 영토를 넓혀갈 즈음, 오히려 푸른 실핏줄처럼 건강하다. 그가 시의 텃밭에서 키워낸 시(詩)의 채소들은 끝까지 푸른 생명력을 끌어간다. 이처럼 그의 시적 생명력은 직선으로 뾰족하지 않고 둥근 만월처럼 곡선을 그어댄다. 시 「숨」에서 숨은 삶을 더 단단하게 다지는 순간을 표상한다. “자기 색을 뚫고 나오는 시간”인 것이다. 들숨과 날숨이 무수한 반복을 통해 자기 생명성에 대한 농밀한 접근을 암시한다. “고립된 그들의 몸속에 아가미가 생”(「거제도」)기는 일이나 “엉거주춤 세상 구경”(「두부」)하는 일 모두 건강한 생명성을 담보로 하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시적 확장을 잊지 않는다. 이중 ‘두부’는 ‘흙 속의 한 알의 콩 → 엉거주춤 세상 구경 → 매타작을 당하는 알몸 → 으스러진 온몸 → 뜨거운 눈물 → 순백의 얼굴 → 네모반듯하게 태어남’으로의 시적 확장을 이뤄낸다. 이번 시집의 생명성은 바다와 숲에서 출발한다. 「물길이 살고 있다」에서 ‘자기 길’이나 「보도블록 틈새에 핀 민들레」에서 ‘가던 길’은 같은 길이 아니다. 앞의 길은 스스로 꾸려가는 자기 생명성을 말하는 것이고, 뒤의 길은 타인에 의해 위협을 받은 길로 서로 상반된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길은 역사에 대한 생명성이 푸르게 우거지는 길이다. 더 나아가 생명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돋보이게 하는 것은 시대 인식이다. 시 「거제도」나 「지리산」 같은 작품은 역사에 대한 기억들을 오롯하게 각인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