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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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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두부 / 숨 / 무제 / 거제도 / 비무장지대는 흐른다 / 물회오리 / 물길이 살고 있다 / 보도블록 틈새에 핀 민들레 / 세로야 괜찮아 / 봄동 / 산불 이후 / 유쾌한 손 / 힘든가 봄 / 출가

제2부

식물 생각 / 앵무새 가출기 / 여치에게 / 별이 빛나는 느티나무 / 까망이의 모험 / 동물의 숲 / 아프리카 / 기적 / 꿈꾸는 유목 / 미술관 옆 카페에 점순이가 산다 / 생일

제3부

임자도 육젓 / 갯벌을 키우는 시간 / 달려라 뻘배 / 멸치털이 / 봄 소금밭 / 어부의 꿈 / 집어등 / 출항 / 멸치 똥을 따는 밤 2 / 소등(小燈)섬

제4부

조용한 섬 / 꽃샘 / 숲 서정 / 숲 / 문득 팔월 / 장마 / 비린 꽃 / 잔밥 / 미자 언니 / 레몬 / 파리가 죽었다 / 습격 / 달밤 / 내 방 안, 화분에게 / 지리산

▪ 작품 해설 : 연두순을 밀어 올리는 공존의 윤리 _ 김병호

저자 소개 1

전남 영암 금정에서 태어났다. 농촌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투데이신문』 직장인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광주전남작가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풀이라서 다행이다』 『별이 빛나는 느티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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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128*205*7mm
ISBN13
9791130824116

책 속으로

「보도블록 틈새에 핀 민들레」

제발 밟지 마

예쁘다고 머리를 따 가지 마

나를 내버려 둬

가던 길을 그냥 가

힘들게 나왔잖아

끈질기게 살잖아

나는 보도블록 틈새에 핀 민들레

건조한 도시에 홀씨가 되어 흩어질 때까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버틸게

다시 싹을 틔우고

내 얼굴을 보고 웃을 때까지

「산불 이후」

선 채로 죽은 소나무 백골이 되었구나 반쯤 죽은 도토리나무는 까만 몸을 뚫고 연두순을 밀어 올리네 아카시아 조릿대 옻나무 찔레 순들이 푸르게 푸르게 검은흙을 살리고 있구나

생태계의 지령을 받아 다시 태어난 나무들
잿더미 속에서도 스스로 일어서는 산

산을 내려오는데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길을 묻는다
여리 올라가면 질이 나오요 죽기 전에 한번 와볼라고 왔는디 매겁시 왔는갑소

무릎이 아픈 의자가 뿌리를 내리고
햇살이 구름이 종종 앉았다 간다

산허리에 구불구불 걸린 둘레길
지팡이가 뒤뚱거리며 걸어간다

「별이 빛나는 느티나무」

산길에 다리를 다친 새끼 노루 한 마리 집으로 데려왔다 찬밥과 물을 주었지만 먹지 않았다 엄마는 집에 놔두면 죽는다고 산에 데려다 놓으라고 했다 노루 엄마가 와서 데려간다고… 흰둥이 병아리 느티나무가 친구였던 소녀는 떼를 써보았지만 해거름 산에 올랐다 이방도깨비가 김 서방 김 서방 쫓아올 것 같은 어둠에서 도망쳤다

놓아준 자리에 가보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울까 봐 두 눈을 감았다 삐쩍 말라 흙으로 돌아가는 몸을 나뭇잎으로 무덤을 만들고 느티나무 잔가지를 꽂았다

나무 한 그루 환생했다
그날 뒤를 돌아보는 나와 눈이 마주친 노루의 눈에서 별이 빛나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작품 세계

한영희의 두 번째 시집 『별이 빛나는 느티나무』는 식물적 사유를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고통을 재구성하는 독보적인 시 세계를 구축한다. 이전 첫 시집 『풀이라서 다행이다』에서 보여주었듯 시인은 자연을 단순한 관찰의 대상이나 인간의 정서를 투영하는 배경으로 치부하지 않고, 자연의 생명력이 인간의 고난과 어떻게 공존하며 상호 침투하는지를 집요하게 탐색한다.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은 이름 없는 풀과 꽃들이 자신의 색을 뚫고 나오는 시간의 층위를 포착하여, 이를 불안한 인간 의식의 절규와 결합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강가에서 들리는 식물의 숨소리를 통해 자신의 생존 의지를 확인하며, 식물의 물리적 성장이 곧 인간 정신의 지평 확장임을 시로 증명하려 한다.

그가 보여주는 시적 통찰은 모든 비인간 물질에 내재한 활기와 행위 주체성에 주목하는 시적 자세와 깊이 맞닿아 있다. 식물과 자연을 수동적인 도구로 여기지 않고 인간과 더불어 세계를 구성하는 능동적인 활력가로서 존중하며, 식물의 미세한 움직임 속에서 생동하는 물질의 힘을 포착해 내는 시적 태도가 한영희 시의 개성을 담보하는 주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시집 아무 곳이나 펼쳐, 무작위로 고른 작품을 읽어본다고 해도 한영희 시인에게 식물은 단순히 고정된 생명체가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며 끝내 재생하는 능동적 주체로 염원되고 있음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시인은 인간중심적 형이상학을 넘어 식물 고유의 시간성과 관계적 사유에 집중하며 자신의 식물적 사유로 심화시킨다. 시인은 파괴된 세계에서 우리 자신을 분리하는 대신 식물의 존재를 경유하여 생명을 향해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고립된 인간 존재가 자연의 거대한 순환 및 다수성과 결합하는 과정을 미학적으로 완성한다. 시집 『별이 빛나는 느티나무』가 그 결정판이다. 보도블록 틈새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버티는 민들레나 산불 이후 잿더미 속에서 연두순을 밀어 올리는 나무들이 바로 그렇다.

결국 한영희의 시 세계에서 인간의 고난과 식물의 생존 투쟁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서로의 숨소리를 공유하는 단일한 생태적 사건으로 통합된다. 시인은 식물이 마지막 에너지를 뿌리로 보내며 다음 계절을 준비하듯, 인간의 상처 또한 새로운 삶을 향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 시집은 인간과 비인간의 이분법을 타파하고 식물적 감각을 통해 고통을 재생의 동력으로 치환하는 존재론적 실험의 장이 된다. 독자는 이 시집을 통해 식물이 지닌 비인지적이고 비관념적인 사유 방식을 배우며, 자신의 삶을 자연의 거대한 관계망 속에서 재정의하는 미학적 인식을 얻게 된다. 시집은 우리가 잃어버린 식물적 감각을 회복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고유한 품위와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 김병호(문학평론가 · 협성대 교수) 해설

추천평

한영희의 시들은 온통 세상이 멍들어 있는 시간 속 시름과 좌절의 좌표들이 점점 영토를 넓혀갈 즈음, 오히려 푸른 실핏줄처럼 건강하다. 그가 시의 텃밭에서 키워낸 시(詩)의 채소들은 끝까지 푸른 생명력을 끌어간다. 이처럼 그의 시적 생명력은 직선으로 뾰족하지 않고 둥근 만월처럼 곡선을 그어댄다. 시 「숨」에서 숨은 삶을 더 단단하게 다지는 순간을 표상한다. “자기 색을 뚫고 나오는 시간”인 것이다. 들숨과 날숨이 무수한 반복을 통해 자기 생명성에 대한 농밀한 접근을 암시한다. “고립된 그들의 몸속에 아가미가 생”(「거제도」)기는 일이나 “엉거주춤 세상 구경”(「두부」)하는 일 모두 건강한 생명성을 담보로 하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시적 확장을 잊지 않는다. 이중 ‘두부’는 ‘흙 속의 한 알의 콩 → 엉거주춤 세상 구경 → 매타작을 당하는 알몸 → 으스러진 온몸 → 뜨거운 눈물 → 순백의 얼굴 → 네모반듯하게 태어남’으로의 시적 확장을 이뤄낸다. 이번 시집의 생명성은 바다와 숲에서 출발한다. 「물길이 살고 있다」에서 ‘자기 길’이나 「보도블록 틈새에 핀 민들레」에서 ‘가던 길’은 같은 길이 아니다. 앞의 길은 스스로 꾸려가는 자기 생명성을 말하는 것이고, 뒤의 길은 타인에 의해 위협을 받은 길로 서로 상반된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길은 역사에 대한 생명성이 푸르게 우거지는 길이다. 더 나아가 생명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돋보이게 하는 것은 시대 인식이다. 시 「거제도」나 「지리산」 같은 작품은 역사에 대한 기억들을 오롯하게 각인시킨다. - 고선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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