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와 시공간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저자의 학문적 탁월함은 영문으로 출간된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이미 잘 드러났다. 저자가 이번에는 같은 화두를 가지고 한국의 독자들과 대화의 문을 열었다. 본서는 의례의 정체성 형성 기능(자기지시적 메시지)과 윤리적 기능(규범적 메시지)이 고린도 교회의 시공간을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에클레시아, 신전(성전), 경계, 몸, 세례, 은사, 젠더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논의가 모두 흥미진진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의 문제를 다루는 제4장에서 저자의 관점이 지닌 해석적 유용성이 특히 더 빛난다.
저자는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한글로 풀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 성서학자들의 논의를 함께 인용해가며 해석자의 삶의 자리와 결합된 학문적 대화를 시도한다. 그것은 이 책의 프롤로그가 잘 보여주듯, 성서 해석에 그 자신의 정체성을 담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본서는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민족적, 언어적, 제의적, 공간적, 경계적, 사회계층적 정체성 협상 과정”의 일부이다. 내가 보기에 본서에서 보여준 저자의 면모는 구성주의 역사가에 가깝다. 앞으로 계속되는 “협상” 과정에서 저자의 삶의 자리가 그의 성서 해석을 어떻게 규정하며 확고하게 자리 잡아가게 될 지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