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생명들이 살아온 위대한 시간과 생이 다하고 흘러갈 다음 세상에 대해 생각한다. [향내 한 점]은 죽음에 대한 비애의 표상을, 아프게 아름다웠던 생의 궤적을 현시한다. 영겁회귀하는 만상의 흐름을 계시한다. 생의 끝자락을 노래하는 시인의 시가 때로 아프게 진동한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는 “맹목의 푸른 절규”가(「바랭이풀」), “막장 끝판다워/더 아름답게 저무는” 벚꽃의 종언이(「벚꽃 엔딩」) 뭉클하게 몸을 훑고 지나간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서늘한 증언에는 즉자적 진경과 자유로운 상상이 거침없이 물결친다. “이제 그만 너덜너덜해진 옷은 벗어 버리고” “물이나 바람 한 줄기 기(氣)로 되돌아가/건곤을 자유로이 누비”고자 하는 소망에도 그러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와병이 깊고 보니」). 그러고 보면 죽음 이후에 펼쳐질 상상의 장면들은 역설적이게도 장쾌하고 역동적이며 활달하다. 죽음은 저 “십만억 평 광활한 하늘”로의 도약이므로, ‘대동’ 세계로의 진입이므로 슬퍼할 건 없으리. 한 생의 소멸은 결국 “일망무제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 “수수만 분해된 원자들로” 떠도는 과정이자 끝없이 몸을 바꾸는 과정이기에.(「끈」) 그리하여 여기 무한히 열린 ‘으늑한 절집 한 채’ 지어진다(「찬 꽃 한 채」). 그 속에서는 세속의 집착에서 벗어난 자유가, 영겁회귀의 시간이, 생의 열락과 허무, 생에의 긍정이 뒤섞인 채 무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