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그러다 앉아서 조는 사람, 졸다가 깨서 밥을 차리고 메시지를 확인하는 사람, 종일토록 아무런 연락이 없던 하루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빨래를 걷고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 혹시나 당신이 남긴 말이 있을까 싶어 시집을 펼치는 사람, 외롭다는 말마다 밑줄을 긋는 사람, 드라마를 보는 사람, 푸른 새벽까지 꽃대처럼 서서 안개 속에 젖어 있는 사람, 아버지처럼 떨어진 단추를 다는 사람, 이별을 위해 대구탕을 아까부터 끓이는 사람, 명절이면 문 닫은 음식점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 한식 뷔페에 미역국이 있으면 오늘이 생일인 사람 내일도 생일인 사람, 푸고 남은 찌개 뚜껑을 조금 열어 놓는 사람, 밥 먹는 동안 찌개 냄새가 방 안에 고루 퍼지게 그래서 이 집은 아직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 언제부턴가 시작된 바람의 상처를 꽃이라 부르는 사람, 비가 오면 시를 쓰는 사람, 시를 쓰면 비가 오는데 자꾸 오는데 비가 오면 자꾸 시를 쓰는 사람, 비 내리는 소리를 비 받는 소리로 옮겨 적는 사람, 빗소리 속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하지 못했던 일들을 시작하는 사람, 빈 교실에 앉아 혼자 읽는 사람, 퇴직 신청서를 쓰는 사람, 저녁이면 목이 한없이 길어지는 사람, 저기 저 버스에서 당신이 내렸으면 잠시 바라보다가 집으로 걸어 들어갔으면 밥 짓는 냄새가 다가오고 또 그렇게 밤이 왔으면, 오십 년 만에 씨앗을 심는 사람 그리고 편지를 쓰는 사람, 그렇게 오래도록 곤고한 사람, 외로운 사람, 투박한 사람, 불편한 사람, 한없이 착한 사람, 착하고 아픈 사람, 착하고 아프고 서투른 사람, 진짜여서 서투른 사람, 진짜여서 운명처럼 기적처럼 시를 쓰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