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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우
국내작가 문학가
출생지
경상북도 영주
작가이미지
채상우
국내작가 문학가
경북 영주 출생이다. 2003년 계간 [시작]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멜랑콜리』, 『리튬』, 『필』이 있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나는 나의 정확한 태초를 모른다”라고 스스럼없이 선언하는 시인, 그러니까 기원(起源) 미상인 시인, 그래서 오히려 기원(紀元)을 창안하고 갱신할 수 있는 시인, 그렇기에 기원전과 기원후를 넘나드는 시인, “계속해서” 태어나는 시인, “소멸”하지 않는 시인, “태어날 수 없으면” “남의 몸을 빌려서라도 다시 태어”나는 시인, “물의 기원전으로 태어”나고 “잠으로 태어”나는 시인, 그리하여 “영원히 잠들지 않는” 시인,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심장”이자 “뼈도 근육도 없이 떠도는 것”, “세상이 한 번도 꺼내 보지 못한 야생의 문장”이면서 “동공처럼 텅 빈 흰, 억류된 슬픔”, 기어코 “뿌리 없는 채로 자라는 것”, “저 맹목이” “달리는 일만이 나를 이끌었으므로” “여전히 먼 설원의 허공을 달”리고 달리는 시인, 그러니 끔찍하나 마땅하게도 “뒤를 돌아보면 거긴 아무”것도 없을밖에, 그러니 내처 참담하게도 “나는 십 년 전에 죽었다”고 “내 문장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고 자인할밖에, 다만 만물은 유전할 뿐(Panta Rhei), “폐허가 된 새소리와 기적 소리 강물 흘러가는 연민에 대해” “거짓말을 쓰고 싶었”지만 결코 거짓말을 적지 않은 시인, “산타모니카로/산타바바라로/로스 오소스로”, “독립문로 4길 26-4” “내가 살던 서대문 옥천동 126번지”로 수천 킬로미터 대륙을 “다시금 날고 있”는 모나크 나비처럼 자신의 “미래와 과거”를 “무작정” “단숨에” 횡단하는 시인, 마침내 “사람과 신의 경계에서 물결”치는 시인.
  • 오금님 시인은 말을 참 능숙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부린다. 예컨대 「조바심 조림」을 보라. 시인은 ‘생선’ 대신 “조바심”을 졸인다. “조바심” 중에서도 “작고 단단한 조마조마”를 졸인다. “작고 단단한 조마조마”는 입안에 넣고 굴리면 시인의 말처럼 정말 “쫄깃”하다. 그리고 “안절부절”도 “느긋함”도 또 “애간장”도 “조바심 조림”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재료들이다. 이에 비해 “안 될 거야는 쓴맛이 나니 넣”어선 안 된다. “조바심 조림”이 거의 완성될 때쯤엔 “별거 아니네를 한 방울 떨어뜨려 살살 버무려”야 한다. 이때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떨리는 두 손 마주 잡”고 끝까지 차분하게 졸여야 한다. “자, 이제 불을 끄고 뚜껑 열면, 꿀맛”이다. 흰밥 한 그릇을 가져다 “조바심 조림”을 얼른 한입 먹어 보고 싶지 않은가. 물론 “조바심 조림”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어림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딱 하나로 한정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당장 소망하는 바일 수도 있고, 꼭 이루고 싶은 사랑일 수도 있고, 인생 전체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든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애면글면 졸여야 겨우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시는 이런 면에서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세다. 독자는 자신이 겪어 온 이런저런 일들을 이 시에 대입해 볼 것이고 그리하여 지나온 생을 다시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숨짓고 부끄러워하고 애달파하고 기뻐하고 때로는 울지도 모른다. 시가 하는 일이란 이런 게 아닐까. 독자가 시에 자신을 스스로 밀어 넣어 자신의 생을 다시 살게끔 하는 것 말이다. 오금님 시인의 시들은 이런 점에서 탁월하다. 그 연원으로 “한자리에서” “초원 한가운데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저 “응고롱고로 나무”처럼 일생을 오롯이 견인(堅忍)해 온 시인의 나날을 떠올리는 일은 안타깝지만 온당할 것이다(「응고롱고로 나무처럼」). 이런 맥락에서 이 시집은 그 전체가 ‘시’라는 “아슬아슬한 비밀”을(「비밀은 거짓말을 포함한다」) 생성하고 유지하는 능동적 헌신의 드라마다. 결국 오금님 시인의 시들은 어떤 한 문장을 향해 집결하고 있는데, 그 문장은 “한번 문 시를 놓지 않을 뿐”이다(「발톱을 숨기고」). 시에서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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