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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우
국내작가 문학가
출생지
경상북도 영주
작가이미지
채상우
국내작가 문학가
경북 영주 출생이다. 2003년 계간 [시작]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멜랑콜리』, 『리튬』, 『필』이 있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그러다 앉아서 조는 사람, 졸다가 깨서 밥을 차리고 메시지를 확인하는 사람, 종일토록 아무런 연락이 없던 하루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빨래를 걷고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 혹시나 당신이 남긴 말이 있을까 싶어 시집을 펼치는 사람, 외롭다는 말마다 밑줄을 긋는 사람, 드라마를 보는 사람, 푸른 새벽까지 꽃대처럼 서서 안개 속에 젖어 있는 사람, 아버지처럼 떨어진 단추를 다는 사람, 이별을 위해 대구탕을 아까부터 끓이는 사람, 명절이면 문 닫은 음식점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 한식 뷔페에 미역국이 있으면 오늘이 생일인 사람 내일도 생일인 사람, 푸고 남은 찌개 뚜껑을 조금 열어 놓는 사람, 밥 먹는 동안 찌개 냄새가 방 안에 고루 퍼지게 그래서 이 집은 아직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 언제부턴가 시작된 바람의 상처를 꽃이라 부르는 사람, 비가 오면 시를 쓰는 사람, 시를 쓰면 비가 오는데 자꾸 오는데 비가 오면 자꾸 시를 쓰는 사람, 비 내리는 소리를 비 받는 소리로 옮겨 적는 사람, 빗소리 속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하지 못했던 일들을 시작하는 사람, 빈 교실에 앉아 혼자 읽는 사람, 퇴직 신청서를 쓰는 사람, 저녁이면 목이 한없이 길어지는 사람, 저기 저 버스에서 당신이 내렸으면 잠시 바라보다가 집으로 걸어 들어갔으면 밥 짓는 냄새가 다가오고 또 그렇게 밤이 왔으면, 오십 년 만에 씨앗을 심는 사람 그리고 편지를 쓰는 사람, 그렇게 오래도록 곤고한 사람, 외로운 사람, 투박한 사람, 불편한 사람, 한없이 착한 사람, 착하고 아픈 사람, 착하고 아프고 서투른 사람, 진짜여서 서투른 사람, 진짜여서 운명처럼 기적처럼 시를 쓰는 사람.
  • 시인이라면 아니 딱히 시인이 아니더라도 그 누구나 자신만의 저녁을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저녁을 두고 “어둠은 토란잎, 호박잎, 오이, 들깻잎을 거쳐 고춧잎으로” 사라진다고(「저녁의 길」) 쓸 수 있는 시인은 가감 없이 말하건대 박춘희 시인밖에 없다. 저 적요함을, 저 막막함을, 저 쓸쓸함을, 그리고 저 하릴없음과 속수무책을 대체 어떻게 달리 번안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저 도리 없는 아득함은 단지 날마다 스며드는 어둠 앞에 선 자의 부질없는 망연자실이 아니다. 그 저녁 속엔 “티눈으로 단단히 박”힌 “얽히고설킨 뿌리의 가계”와(「감자밭 가계」) 지금도 여전한, 신산한 하루하루가 맺혀 있다. 예컨대 그 저녁엔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어머니의 맨발과 통풍에 시달리시던 아버지의 부은 발”이(「감자밭 가계」), “아카시아나무로 입안”이 헌 “소죽솥 아궁이”가(「아버지의 겨울 2」), “저수지 곁에서 종일 서서 생선을 굽다가 무릎이 다 닳아빠진” 어떤 이의 일생이(「생선구잇집 이 씨」), “벌집 지하방 칸칸마다” “일벌마냥 들락거리”던 여인들의 “알뜰하다 못해 지독한” 생계가(「만리동 연가」), “막차를 놓치고 힘이 쭉 빠져 있는” 사내의 덧없는 비장이(「어떤 귀가」), “염생식물”처럼 발갛게 “터진”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의 “손등”이(「공단으로 오는 봄」) 얼룩져 있다. 그러니 “누군가 불러 주지 않으면 영영 잊힐 것 같은” 마을 이름들(“짐막골, 싱골, 먹골, 밤나무골, 바른골, 사늘, 소진골” 등등)과 온갖 나물의 이름들(“삽딱주, 이밥추, 나물취, 미역취, 수리취” 등등), 그리고 시집 곳곳에 옹그리고 앉은 경북 봉화의 말들은 그 하나하나가 “늦도록” “다정한 이름들”인 게 분명하지만(「어떤 기록」), 곰곰이 셈해 보자면 처연하고 비참한 누대의 고통이 “독한 마음을 먹고” 애를 태우다 겨우 “아문 자리”라고 말하는 게 옳다. 그리고 그것이 “상처 위에도 오롯이 솟는 생의 그리움”이 뜻하는 바일 것이다.(「쥐똥나무」) 이제야 알겠다. 왜 “저녁”이 아니라 “어둠”이 “토란잎, 호박잎, 오이, 들깻잎을 거쳐 고춧잎으로 사라지네”라고 시인이 적었는지 말이다. 저녁은 그저 어두워지는 시간이 아니라 어두워짐으로써 비로소 어둠이 사라지는 때다. 쥐똥나무는 그때가 되어서야 “수만 송이 환한 꽃가지”를 버리고 “쥐똥 같은 열매를 쏟아 내”고(「쥐똥나무」), “옛집”은 “생생한” “숨을 담는 집”이 된다(「옛집 2」). 이 시집이 정녕 지극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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