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라면 아니 딱히 시인이 아니더라도 그 누구나 자신만의 저녁을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저녁을 두고 “어둠은 토란잎, 호박잎, 오이, 들깻잎을 거쳐 고춧잎으로” 사라진다고(「저녁의 길」) 쓸 수 있는 시인은 가감 없이 말하건대 박춘희 시인밖에 없다. 저 적요함을, 저 막막함을, 저 쓸쓸함을, 그리고 저 하릴없음과 속수무책을 대체 어떻게 달리 번안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저 도리 없는 아득함은 단지 날마다 스며드는 어둠 앞에 선 자의 부질없는 망연자실이 아니다. 그 저녁 속엔 “티눈으로 단단히 박”힌 “얽히고설킨 뿌리의 가계”와(「감자밭 가계」) 지금도 여전한, 신산한 하루하루가 맺혀 있다.
예컨대 그 저녁엔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어머니의 맨발과 통풍에 시달리시던 아버지의 부은 발”이(「감자밭 가계」), “아카시아나무로 입안”이 헌 “소죽솥 아궁이”가(「아버지의 겨울 2」), “저수지 곁에서 종일 서서 생선을 굽다가 무릎이 다 닳아빠진” 어떤 이의 일생이(「생선구잇집 이 씨」), “벌집 지하방 칸칸마다” “일벌마냥 들락거리”던 여인들의 “알뜰하다 못해 지독한” 생계가(「만리동 연가」), “막차를 놓치고 힘이 쭉 빠져 있는” 사내의 덧없는 비장이(「어떤 귀가」), “염생식물”처럼 발갛게 “터진”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의 “손등”이(「공단으로 오는 봄」) 얼룩져 있다.
그러니 “누군가 불러 주지 않으면 영영 잊힐 것 같은” 마을 이름들(“짐막골, 싱골, 먹골, 밤나무골, 바른골, 사늘, 소진골” 등등)과 온갖 나물의 이름들(“삽딱주, 이밥추, 나물취, 미역취, 수리취” 등등), 그리고 시집 곳곳에 옹그리고 앉은 경북 봉화의 말들은 그 하나하나가 “늦도록” “다정한 이름들”인 게 분명하지만(「어떤 기록」), 곰곰이 셈해 보자면 처연하고 비참한 누대의 고통이 “독한 마음을 먹고” 애를 태우다 겨우 “아문 자리”라고 말하는 게 옳다. 그리고 그것이 “상처 위에도 오롯이 솟는 생의 그리움”이 뜻하는 바일 것이다.(「쥐똥나무」) 이제야 알겠다. 왜 “저녁”이 아니라 “어둠”이 “토란잎, 호박잎, 오이, 들깻잎을 거쳐 고춧잎으로 사라지네”라고 시인이 적었는지 말이다. 저녁은 그저 어두워지는 시간이 아니라 어두워짐으로써 비로소 어둠이 사라지는 때다. 쥐똥나무는 그때가 되어서야 “수만 송이 환한 꽃가지”를 버리고 “쥐똥 같은 열매를 쏟아 내”고(「쥐똥나무」), “옛집”은 “생생한” “숨을 담는 집”이 된다(「옛집 2」). 이 시집이 정녕 지극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