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정확한 태초를 모른다”라고 스스럼없이 선언하는 시인, 그러니까 기원(起源) 미상인 시인, 그래서 오히려 기원(紀元)을 창안하고 갱신할 수 있는 시인, 그렇기에 기원전과 기원후를 넘나드는 시인, “계속해서” 태어나는 시인, “소멸”하지 않는 시인, “태어날 수 없으면” “남의 몸을 빌려서라도 다시 태어”나는 시인, “물의 기원전으로 태어”나고 “잠으로 태어”나는 시인, 그리하여 “영원히 잠들지 않는” 시인,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심장”이자 “뼈도 근육도 없이 떠도는 것”, “세상이 한 번도 꺼내 보지 못한 야생의 문장”이면서 “동공처럼 텅 빈 흰, 억류된 슬픔”, 기어코 “뿌리 없는 채로 자라는 것”, “저 맹목이” “달리는 일만이 나를 이끌었으므로” “여전히 먼 설원의 허공을 달”리고 달리는 시인, 그러니 끔찍하나 마땅하게도 “뒤를 돌아보면 거긴 아무”것도 없을밖에, 그러니 내처 참담하게도 “나는 십 년 전에 죽었다”고 “내 문장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고 자인할밖에, 다만 만물은 유전할 뿐(Panta Rhei), “폐허가 된 새소리와 기적 소리 강물 흘러가는 연민에 대해” “거짓말을 쓰고 싶었”지만 결코 거짓말을 적지 않은 시인, “산타모니카로/산타바바라로/로스 오소스로”, “독립문로 4길 26-4” “내가 살던 서대문 옥천동 126번지”로 수천 킬로미터 대륙을 “다시금 날고 있”는 모나크 나비처럼 자신의 “미래와 과거”를 “무작정” “단숨에” 횡단하는 시인, 마침내 “사람과 신의 경계에서 물결”치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