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투르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철학자. 고전수사학 및 논쟁에 관한 현대 이론 분야에서 훈련받았으며, 설득의 주요 수단에 초점을 맞춘 세미나를 열며 사람들이 철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2018년에는 ‘철학과 자기계발(Philosophie & d veloppement personnel)’이라는 철학 워크숍을 개설해 실천적 관점에서 철학을 바라보고 삶에 적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철학을 재조명한 《무기력한 날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www.developpement-personnel?paris.com
당신은 주위 사람 중에서 당신이 자신을 활짝 피워내는 데 가장 도움이 될 사람을 분간할 수 있을까? 누가 당신이 자신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가? 반대로 누가 당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가 없으면 무방비 상태가 되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는가?
만일 우리가 쾌락을 위해 살고 있다면,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낄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무절제는 자신에 대해 불만스러워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종의 보상 수단인 셈이다. 그런 불만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리 모두를 괴롭히며 조여드는 어떤 깊은 욕망에서, 자신을 최고로 발휘해야 한다는 끊임없는 관심에서 비롯된다.
애초에 가장 진정으로 바랄 만한 좋은 것도 우리를 눈멀게 하고, 자신이 더 이상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 느끼지도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정의 추구가, 그러니까 동료들에게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자신에 대한 찬사를 듣고 싶은 마음이 그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종류의 열망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야망은 종종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자신을
얼마나 많은 이가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는 핑계를 대며 사랑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가? 노래하는 내일의 약속을 만족시키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단념했던가? 저 대단한 것들을 쫓으려는 갈망은 우리를 세상에 대한 혐오 속에 빠뜨리고, 그렇게 하여 좋은 것들 하나하나가 주변의 평범함과 시시함 속에 둘러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