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의 기억 속에도 있다. 풍우가 크게 인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날따라 아버지 표정은 더없이 굳어있었다. 아버지는 다랭이논 논둑에 쭈그려 앉아 벼 이삭을 헤치며 “올해 농사는 허사겠구먼” 하는 장탄식을 했었다. 간밤의 풍우가 벼꽃을 떨어 놓고 씻어내린 것이다. 그때 나도 아버지 곁에 쭈그리고 앉아 논물에 손을 담가 허옇게 뜬 벼꽃을 ‘보고’ 있었다. 마치 논물에 뜬 흰 벌레나 잡으려는 양 두 손을 모아 작은 손그릇을 만들어 흰 벼꽃을 손안에 넣곤 했었다. 그때 나는 벼에도 하얀 벼꽃이 핀다는 사실과 함께 “물에 뜬 벼꽃들”은 “눈을 비벼 봐”야만 겨우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몇 년 후, 농업 시간에 안 사실이지만 벼꽃은 곤충들이 가루받이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분受粉을 하는 제꽃받이 작물이란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벼꽃이 피었다 지는” 그 짧은 “두 시간” 안에만 “수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시인의 “수정아, 너였구나” 라는 외침은 다름 아닌 생명이 잉태하는 순간을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황홀을 감각화한 표현이리라.
그런데 사실 시인이 어떤 사물을 ‘잘 본다’는 것은 그 사물의 생명의 이치를 ‘잘 본다’는 것과는 좀 다르다. 사물의 생성의 이치 그 자체에 더 황홀해하는 사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 주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개는 사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오차 없는 정량화의 유혹에 시달린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과학자들이 그렇다. 이에 비해 시인의 ‘봄’은 우리를 사로잡는 사물들 그 자체, 그리고 그 사물들과 다른 사람과의 이치보다는 그 “수정”을 ‘봄’과 동시에 그 “수정”을 있게 한 “먼 하늘들”의 숭고를 ‘눈을 비비며’ 바라보는 자이다. ‘보는’ 것에 너무 황홀해서 ‘봄’의 결과를 정량화하는 데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자들이 바로 시인인 점을 보면, 시인은 성직자와는 비슷하고 과학자와는 거리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