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덮으면서, 수록된 시편 가운데 유독 다시 읽어보고 싶은 것이 「이 겨울에는」이다. 이 시에 경제나 구호나 시대사나 자의식이 틈입해 있을 리 없다. 그것들은 그저 옹색하고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여기에서 ‘당신’과 ‘나’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당신’은 ‘나’가 될 수 있고, 언제든지 ‘나’는 ‘당신’이 될 수 있다. ‘당신’과 ‘나’는 애초부터 없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시를 읽는 것은 밤하늘에 자욱이 펼쳐진 별들을 바라보는, 시간도 존재도 증발한 공간을 유영하는 환상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값을 지닐지 모른다.
부치지 못한 숱한 엽서의 어느 단락 같은 처연한 어조의 고백! ‘당신’과 ‘나’의 부재 속에 오로지 ‘당신’과 ‘나’의 스산한 거리만이 문면에서 무심히, 하염없이 파동 지을 뿐이다. 그 파동에서 느껴지는 쓸쓸한 그리움, 또는 물무늬처럼 번지는 단색조의 칸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