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우면/수없이 이름을 바꾸어 달려”오는 것은 무엇인가(「천천히 그러나 불가역적인 멸망」). 어느 날은 ‘당신’의 모습으로, 어느 날은 ‘살아남은 나에게로’ 불어오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시인의 말」). 김령의 시는 그것에 대해 단번에 응답하지 않는다. 쉽게 이름 붙이지 않는다. 생활로부터 은연히 벗겨지는 멜랑콜리, 희미하게 빛나는 ‘당신’의 여백을 모두 수집하고서야, “쏟아지는 빗방울 중에서/네가 보낸 함선을 찾”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서야 겨우, 그것이 내는 소리를 받아 적는다(「장마」). 김령의 시는 여운이 깊은 지형을 찾아 떠돈다. 읊조린다. “독당근 맨드레이크 피마자 미치광이풀 옻나무 노란각시버섯 무당버섯 애광대버섯”, 계절이 흐르고 다시 가만히 읊조린다. “란타나 히아신스 히간바나 수선화 은방울꽃 극낙조화 로벨리아”, 김령은 아름다운 형상과 “독을 품은 것들”을 동시에 부려 놓는다(「여름」).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동무들과 “교복 차림” “무거운 가방을 메고” “화르르르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을 겹쳐 놓는다(「겹잎」). 사랑의 주변에서 떠도는 우울과 그리움, 그 양가적인 정동이 시인의 텅 빈 마음에 들어와 불을 켤 때, 거기 단정과 수수함이 발아한다. ‘나’와 ‘당신’의 거리에서 생성된 언어는 반듯하고 감정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김령은 불온한 미래를 길어 와 시를 쓴다. “확실히 나는/먼지로 돌아가겠구나”라는 결말을 노래하면서도 사랑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린다(「숲속에 누군가 있었네」). 김령은 가까이에 놓인 물질로부터 삶의 한 면이 닳아 가는 것을 기록한다. 그것이 위험물이거나 삶을 진전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김령의 언어는 끝끝내 그것의 꼬리를 따라간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인가 시인인가. 김령은 그것을 위해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언어를 길어 올린다. “바람이 불자 연두색 나뭇잎들이 보채듯 몸을 뒤집는다”(「없는 사람」). “성냥을 발음하는 순간” “핑크빛 아름다운 얼굴”이 상냥하게 변한다(「성냥을 사야 할까」). 그때 ‘당신’의 빈자리로부터 세계가 화르륵 열린다. 김령의 백지는 검정이다. 김령은 밤새 자신의 심장에 언어의 성냥을 긋는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당신’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시와 성냥. 사랑과 상냥. 김령의 단아한 서정이 새로운 옷을 입고 당신을 그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