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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신
국내작가 문학가
출생
1984년 출생
출생지
인천
직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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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신
국내작가 문학가
1984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2016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 『미분과 달리기』 등이 있다. 제8회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삶과 함께 던져진 시공간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게 이동하고 움직일 수 있는가. 문학은 우리에게 공상적 이동 경로를 제공한다. 새롭게 구성된 삶의 지도 입구에서 “의자는 달콤한 과일나무가 되어/서른두 마리의 갈매기”가 열린다(「오렌지」). ‘나’는 의자가 과일나무가 되고 과일이 갈매기가 되는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 비극이나 서사시의 주인공이 그러하듯 우리는 인간성을 증명하기 위해 끝없이 여행을 떠난다. 고난과 고통을 껴안고서라도 온전한 삶을 살아 내기 위하여, 비루한 삶의 정수를 채취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우리가 결국 신이나 괴물과는 다른 문명과 문화가 있는 인간임을 재현한다. 우리는 “승차도 하차도 할 수 없는 기차가 하얀 목도리를 두르고 폭설 속으로 떠”난다(「겨울 3」). 먼 미래와 공백으로 남은 페이지가 우리를 공상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지금-여기에서 ‘당신’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손잡이가 없는 당신”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흘러내리고 “물방울”로 변한다(「겨울 2」). ‘나’와 ‘당신’의 어긋남. 비춰 볼 순 있지만 영원히 만질 수 없는 거울. ‘나’는 ‘나’의 도플갱어이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며 문장을 쓰려고 하면 “다닥다닥 닥나무가 열리고”(「파피루스」) “미래는 마리화나 같아서/현재는 연기처럼 사라”진다(「비틀거리며 비틀즈에게」). 인간은 모험을 떠난다. 자유의 자유를 찾는다. ‘나’는 가시 가득한 장미꽃을 결국 두 손으로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 운명과 사랑의 힘을 기어코 확인하기 위해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 [비틀거리며 비틀즈에게]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꿀처럼 흘러넘친다.
  • 홍미자 시인은 멀어지는 사람이다. 안과 밖으로부터. 겉과 속으로부터. 국내와 국외로부터. 아이와 어른으로부터. 진실과 거짓말로부터. 식탁과 심장과 햇살로부터. 나와 당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이다. 멀어지고 멀어지다가 단숨에 가까워지는 사람이다. 시인은 자기 자신마저 멀어지면서 세계와의 거리를 재조정한다. 시인은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면서 언어로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다. 언어의 실험실에서 “거기로 사라지거나/여기로 돌아오”는 사람이다(「거기와 여기」). “칼날에 묻은 허기/살 오른 방들의 침묵/식탁의 모든 영역”을 다른 차원으로 배치하는 사람이다(「관계」). 멀어지는 사람은 멀어진 사람과의 경계에 무늬를 펼친다. 시인의 궤적을 추적해 보면, 이곳과 저곳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삶의 무늬가 남는다. 사람의 체취가 흐른다. 시인은 이방인의 삶을 자처한다. 집과 식탁에서, 공항과 기차에서 마주한 상처를 언어로 새긴다. 그곳은 아름다운 무늬들로 일렁인다. 시인은 “나는 나만의 무늬를 잃었고/밝히기 난해한 직업을 가졌습니다”라고 고백하며(「통계 센터」) “콕콕 찌르는 바늘의 기억을 따라 남자의 무늬를 그려” 본다(「용산행」). 이방인의 ‘시간은 잘게 쪼개지면서 또 다른 무늬’를 생성한다(「직소 퍼즐」). 무늬에 반사되는 무늬들. 반추(反芻). 반성(反省). 반야(般若). 무늬에 갇혀 있는 울음. 울음에 묶인 심장. 심장을 겹쳐 놓는 시인. 시인은 언어를 통해 “우리였다가 밖이었다가/끊임없이 선을 긋고 다시 허문다”(「붉은토끼풀꽃」). 이방인은 때때로 “거울 안에 살아 있었으나 나를 읽을 수 없”는 유령으로 변하거나(「훔쳐 읽었다」), 때때로 “망설일 틈을 주지 않고 후루룩 넘어가 버리는” 물체가 된다(「우리는 국수를 싫어했다」). 나는 ‘시인-이방인’의 탄생의 순간을 목격한다. 이 시집을 끝까지 읽으면 무늬 뒤에서 멀겋게 웃는 당신을 만날 수 있다. ‘산세베리아 뒤에 숨은 검은 모서리’의 정체를 알 수 있다(「집의 매너리즘」). 비극의 맛을 경험하고서도 기어이 멀어지는 당신, 이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을 기어코 온몸의 무늬로 남기고자 하는 당신, 시인! 이방인, 적법한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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