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년 인도의 콜카타에서 동인도회사 관리자였던 아버지 리치먼드 새커리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815년 아버지가 죽자 영국으로 보내져 차터하우스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학위를 받지 못하고 대학을 중퇴한 후 1833년에는 전문 화가가 될 결심으로 파리에 정착해 한동안 그곳에 살기도 했다. 그의 미술적 재능은 이후 그가 자신의 글들에 덧붙인 삽화에서 엿볼 수 있다. 1836년 파리에서 만난 아일랜드 출신의 이저벨라 쇼와 결혼한 후 1837년 런던으로 돌아와 직업 기자로 활동했다. 새커리의 아내는 셋째 딸을 출산한 1840년부터 정신 질환이 심각해졌고 새커리도 이즈음부터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는데, 이는 이후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커리는 1830년대 후반 [프레이저스 매거진], [뉴 먼슬리 매거진], [펀치]지 등에 다양한 글을 기고하며 작가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역사소설 『배리 린던의 행운The Luck of Barry Lyndon』(1844)은 그가 쓴 최초의 소설로 악당, 불한당 등을 주요 등장인물로 삼고 있다. 『속물들의 책The Book of Snobs』(1848)은 [펀치]지에 연재해 크게 인기를 끈 「영국의 속물들The Snobs of England, by One of Themselves」 연작을 모은 것으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새커리의 특징적 문체가 잘 나타난 글이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자 본명으로 발표한 첫 작품이기도 한 『허영의 시장』은 1847년부터 1848년까지 19개월 동안 월간으로 연재되었다가 1848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작품으로 새커리는 상업적 성공과 비평적 찬사를 모두 얻으며 유명 작가가 되었다. 후기 작품으로는 『펜더니스 이야기The History of Pendennis』(1850), 『뉴컴가The Newcomes』(1855) 등이 있으나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허영의 시장』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새커리는 그 후로도 찰스 디킨스의 유일한 맞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다수의 작품을 창작하다가 1863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갑자기 죽음을 맞았다. 『허영의 시장』은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