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한국소설』에 단편소설이,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제6회 구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연두는 모른다』, 소설집 『핑거로즈』, 함께 쓴 책으로 『언어의 시, 시의 언어』 『향기의 과녁』 『문득, 로그인』 『여자들의 여행 수다』 『音音音 부를 테니 들어줘』 『우리, 그곳에 가면』 『그들과 함께 꿈꾸다』 『여자의 욕망엔 색이 있다』 등이 있다.
제해석은 오랫동안 써오던 붓글씨에 詩的感性을 덧대어 새로운 세상을 확장해나간다. 바다가 물울음을 물고 날아오르기도 하고, 푸른 물살을 가르던 명태가 그 이름을 버리고 황태가 되었듯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새겨졌던 트라우마를 떨쳐내려는 몸부림을 반추한다. 그에게 트라우마는 떨쳐버리고 일어서야 할 디딤돌이며 생장점이다. 詩도 붓글씨도 거기에서 분열하고 성장한다. 전란의 회오리 속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이념의 부조리가 낳은 분단 현실의 갈등이 외로움으로 뒤엉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해석의 詩는 밝은 쪽에 시선이 닿아 있다.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는 아내의 아침밥 짓는 따뜻한 소리와 꽃병아리 난장 치는 손녀의 재롱을 상처로 얼룩진 세월이 일으켜 세운 봄의 노정에서 만난다.
얼핏 보면 무심해 보이지만 몸에 새겨진 자유와 회귀의 경작지를 일궈놓았다. 좀생이별을 바라보며 먼 우주를 동경하기도 하고 바른길로 가라고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벚꽃 이파리 빙어 떼처럼 퍼덕퍼덕 봄날을 지워도 오늘 피는 꽃보다 내일 필 아름다운 꽃을 기다리는 게 이기홍의 詩이다. 현재와 미래가 자리바꿈하는 지점에 닿으면 오히려 가족들과 도란거리던 유년의 本鄕으로 회로를 돌린다. 씨앗들이 껍데기를 뚫고 나오는 탁갑소리와 날아오르려고 꿈틀거리는 애벌레들의 몸부림이 그것이다. 확장된 상상력 속에 들어온 이미지들은 모진 시절을 소환해 애잔한 정겨움을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검룡소 숨소리가 키워낸 BTS가 세계의 빛으로 우뚝 솟아오르지 않느냐는 당당한 기개를 보여주는 이면에서 이기홍의 넓고 깊은 역량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을 그가 살아온 연륜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