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취조실 맞은편에 앉아 한참 대화를 나눈 것 같기도 하고, 한 발짝 뒤에서 함께 숲길을 걷고 온 기분도 든다. 그의 출연작 다수를 봐왔음에도 박해일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강한 빛으로 존재감을 표출하는 스타들 사이에서 그는 담백하고 고요하게 영화 속 인물로 스며드는 쪽이었으니까. 이 두툼한 책에 담긴 기록과 자료, 대화와 증언, 분석과 실험, 문학적 상상의 조각을 이리저리 연결하다 보니 어떤 패턴을 손끝으로 그려보게 된다. 어렴풋이 포착되는 이 배우의 형상은 부드럽게 흔들리면서도 좀처럼 꺾이지 않는 꼿꼿함을 지닌 버드나무 같다. 산책을 할 때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전부인데, 박해일에게 연기 또한 어떤 야심이나 성취로 향하는 통로이기보다 그치지 않는 호기심의 눈으로 인간의 본질을 발견하는 여정이구나 싶다.
백은하의 액톨로지 시리즈가 세상에 나올 때마다 입체적 기획과 성실한 실행에 감탄하는 한편으로 과연 지속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품었다. 결과의 밀도가 높은 만큼 과정이 너무 수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한 직업인의 역사에 다가가는 접근이 이처럼 집요하고도 다감할 수 있을까? 세 권째인 『배우 박해일』을 보면서는 의문이 확신으로 바뀐다. 이 시리즈는 낱낱의 인물에 대한 탐구를 넘어 한국 영화사의 독특하고도 중요한 아카이빙이 될 거다. 해냈구나,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