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작가의 작업은 한국에선 참 보기 드문 하이픈이 들어간 필명처럼 매번 신묘한 감각을 준다. SF 장르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다시 그 법칙을 과감하게 무너뜨린다. 어딘가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모습에서도 때로는 예상치도 못했던 재치를, 때로는 살짝 블랙코미디가 섞인 웃음을 선보이며 SF가 일상이 된 세계도 역시 여러 생명체가 부대끼는 사회임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장르가 SF라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을 장르의 힘으로 가볍게 뛰어넘고, 사소하게 보였던 요소들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세계관을 만들어나간다. 단편이라는 한정된 작업 공간을 여러 연출적 실험으로 무한히 확장하며 나아가는 움직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면모는 반-바지. 작가가 오랫동안 축적된 장르의 유산을 또렷하게 바라면서도, 과거의 궤적에만 갇혀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결과기도 하다. 창작자는 생각하고 상상하는 방향대로 SF의 세계관을 유랑하고, 그 안에서 가능한 무수한 갈래들을 폭넓게 탐구해왔다. 그러한 발상의 과정을 거쳐 태어난 작업물들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블로그를 가리지 않고 게시되며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혀나가도록 만들었다. SF의 눈으로 한국 사회를 다시 바라보며, 이 사회의 여러 구습과 문제점이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희극에 불과함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다. 이제 책을 통해서, 디지털로 작품을 보는 감각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반-바지 작가가 2016년부터 꾸준히 직조해나가는 미지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