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정은 자가 원미(元美), 호가 봉주(鳳州)·엄주산인이며 태창[太倉: 지금의 장쑤성(江蘇省)에 속함] 사람이다. 명나라 가정 26년(1547)에 진사가 되었으며, 남경 형부주사(刑部主事)와 산동부사(山東副使)를 지냈다. 왕세정은 당시 정권을 전횡하던 엄숭(嚴嵩) 부자를 탄핵한 양계성(楊繼盛)을 변호했는데, 그 일로 엄숭이 그의 부친을 죽이고 그를 파직시켰다. 나중에 엄숭이 세력을 잃자 왕세정은 다시 기용되어 형부상서(刑部尙書)까지 올랐다. 이반룡(李攀龍)과 함께 ‘후칠자(後七子)’의 영수가 되었으며, 이반룡이 죽은 뒤로는 20년간 문단을 이끌었다.
저작으로는 ≪세설신어보≫ 외에 ≪엄주산인사부고≫ 174권, ≪속고(續稿)≫ 207권, ≪독서후(讀書後)≫ 8권과 ≪고불고록≫, ≪완위여편(宛委餘編)≫, ≪염이편(艶異編)≫, ≪봉주필기(鳳洲筆記)≫, ≪엄주고선≫, ≪전당시설(全唐詩說)≫, ≪엄산당별집≫, ≪가정이래수보전(嘉靖以來首輔傳)≫, ≪화원≫, ≪서원(書苑)≫, ≪엄주산수제발≫, ≪이물휘원(異物彙苑)≫, ≪휘원상주(彙苑詳註)≫, ≪사승고오(史乘考誤)≫, ≪척독청재(尺牘淸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