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가 트인다고 하지요. 한 분 두 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목이 메였지요. 목이 잠겨 시를 읽다가 끊고 그러다 이어 읽으면 노을 번지듯 여기저기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사는 게 다 시 아이가.” 그랬습니다. 할머니들은 모두 이미 시인이었습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묻어둔 채 “예전에 다 가난했지.” 끝끝내 꺼내고 싶지 않던 이야기를 풀어내며 조금은 가뿐해졌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조금 더 무거워졌을지도 모릅니다. 덜어내면서 가득한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옆 사람이 슬픈 일을 당하면 가장 큰 위로는 함께 울어주는 거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는 함께 울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딱히 뭐라 전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는 정도의 일, 그러다 슬쩍 눈가를 훔치는 일.
“사는 게 다 그렇지!” 애써 밀쳐냈던 과거가 한 편 한 편 쌓여가며 사느라 ‘애썼다’로 변해갔습니다. 위로와 회복의 시간으로 다가왔습니다. 시는 쓰는 게 아니고 씌어 지는 것인가 봅니다.
“무사태평해 보이는 사람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리면 슬픈 소리가 난다.”라는 나쓰메 소세키의 말을 빌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