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돗토리현 출생. 본명은 마쓰바라 이와고로松原巖五郞다. 부모를 일찍 여의어 맏형의 손에 자랐다. 가정 형편상 어려서부터 오사카에서 도쿄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며 육체노동과 행상을 했다. 한때 게이오의숙에서 수학했던 흔적이 보인다. 1888년 21세의 나이로 바람직한 문명의 개화에 관해 질문한 『문명의 문文明疑問』 상편을 자비로 출판했다. 1890년 『고쿠민 신문』에 「올해의 문학계」를 발표했고, 이어서 『내연녀』 『조자카가미長者鑑』 『신저백종新著百種』을 펴내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국회신문사를 거쳐 고쿠민 신문사에 입사했으며, 이때 하층사회 탐방에 주력해 『도쿄의 가장 밑바닥』을 출간했다. 청일전쟁 때 종군기자(한국 민정시찰 기자)로 파견돼 홀로 한반도를 종단하며 민정을 기록해 『정진여록征塵余?』으로 펴냈다. 이는 하층사회 보고와 동일선상에 놓여 여타 종군기와는 구별된다. 타이완에도 종군했으나 열병에 걸려 도중에 귀국했다. 이후 「아시오 구리광산 탐방기」 등이 담긴 『사회 다방면』을 출판하고 『고쿠민 신문』 문예부장을 지냈다. 이 시기 사회소설풍의 단편소설을 다수 집필했다. 이후 『동양전쟁실기』의 편집주임으로 하쿠분칸에 입사했고, 『일본명승지지日本名勝地誌』의 한 권을 맡아 썼다. 그 외의 저서로 『기우치 소고木?宗吾』 『상해기운담商海奇運談』 『신찬동양사문답新撰東洋?史問答』 『여학생 입문서』 등이 있다.
흔히들 가난뱅이는 돌 위에서 산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돌은 부시(부싯돌용 쇳조각)로 쳐서 불을 피우는 것 외에는 땅을 일궈서 곡식을 경작할 수도, 땅을 파서 물이 샘솟게 할 수도 없다. 요컨대 가난뱅이들은 단지 서로 부딪쳐서 댕긴 불로 그저 삶을 영위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기괴한 소굴에서는 내면의 싸움을 통해 무릇 세상의 모든 악한 마음의 결정체, 생활의 희생양, 악마의 표본, 유혹의 신, 육욕의 노예들이 활개를 친다. 잡다한 족속이 뒤엉켜 살아가는 이곳은 도쿄의 비밀이라기보다는 전국의, 어쩌면 전 세계의 비밀을 폭로하는 마지막 대규모 전쟁터인 셈이어서, 유혹의 신과 악마의 변종이 왕성한 기량을 발휘한다. 따라서 이 괴이한 굴을 장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