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그리고 춤추고 연대하고 싶어서 무당이 되었다. 고양시의 작은 마을에 있는 ‘칼리신당’에서 생활한다. 신당에는 힌두교·기독교·불교·이슬람교·증산교 등 다양한 종교의 신자들이 방문한다. 여러 종교를 끌어안는 짬뽕 무당이자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지향 무당이다. 무당은 만물의 신령을 모시는 존재고, 신령은 성차별주의와 종차별주의를 넘어선 존재라고 믿는다. 사회적 금기와 낙인을 글로 써왔다. 지은 책으로 《붉은 선》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엄마는 인도에서 아난다라고 불렸다》(공저) 《신령님이 보고 계셔》 등이 있다. 유튜브 채널 ‘홍칼리’에 띠별 ‘월간운세’를 올리고, 인스타그램(@kali_insight_art)에서 일상을 공유한다.
매듭, 쌀, 곡선, 직선, 실, 밥 등 상징은 어느 장면에나 존재한다. 상징은 만물에 깃든 신성의 형태고 신호다. 신비롭지 않은 하루가 없듯 상징은 어디에나 있다. 만물의 신성을 모시는 샤머니즘에는 하나의 계율과 경전이 없다. 무당인 나는 이 책을 샤머니즘 경전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름 모르는 상징이 떠오를 때 찾을 수 있는 사전이 생겨 기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숫자의 페이지를 펼쳐 타로카드를 보듯 매일 책을 펼쳐 상징을 하나씩 소리 내어 읽고 싶다.
가부장의 폭력에 면죄부를 주는 상징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 책은 상징의 뿌리를 점거하고 권력에 시위한다. 독점된 상징(국기와 대기업의 심벌과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의 십자가)을 모두의 신비로 되돌려 놓는다. 이 책은 가부장 권력의 허상을 불태우는 의례이고 경전이다. 상징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권력의 허상을 낱낱이 불태우고 새로운 우주관으로 안내한다. 잊힌 유산을 끝내 기록하고 공유해 준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
나 역시 우울증을 앓았다. 아침에 눈뜨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꿈속으로 이사한 사람처럼 온종일 잠만 잤다. 꿈에서는 내가 원하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그 꿈이 너무 좋아서, 이대로라면 죽는 것도 달콤하지 않을까 느꼈다. 영원한 잠을 잘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잠만 자던 어느 날, 생생한 자각몽을 꾸었다. 자각몽이란 꿈을 꾸면서 이것이 꿈인 것을 각성한 상태의 꿈이다. 자각몽 속에서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신났다. 잠에서 깬 후 어느 쪽이 꿈인지 헷갈렸다. 자각몽을 꾸는 것처럼 지금을 바라보니, 생 전체가 꿈 이야기로 보였다.
흔히 흉괘라고 하면 시험에 불합격하거나, 몸이 아파지거나, 원하는 직장에 취직이 되지 않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는 점괘가 나오는 것을 뜻한다. 인간사에서 좋지 않은 이별, 고통, 인내하는 시간을 보통 흉하다고 해석하지만, 더 큰 관점에서 그 시간들은 영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흉해 보이는 점괘는 있어도, 흉하고 안 좋은 인생 여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아이덴티티 시리즈를 보면, 다양한 신령들의 형상을 눈치챌 수 있다. 주인공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성별이 다른 존재와 어린아이로도 변한다. 주인공의 다양한 변시은 접신한 무당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인다. 물론 영화 속 주인공은 신령의 힘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당과 다르지만. 꼭 영화 속 예가 아니더라도, 나의 정체성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한다. 어떤 친구를 만나면 해맑은 어린아이처럼 변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를 만나면 수줍음 많은 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모두에게 다양한 얼굴이 잠재된 것이다.
최근 택시를 탔을 때였다. 택시 기사님이 부처님 같은 온화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당신은 세상의 주인공입니다." 나는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부처님 미소를 띤 택시 기사님의 말은 계속됐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에요. 일상을 절제하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만 하면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어요. 그럼 된 거예요."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지 않고 초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나에게 이것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칭찬해주는 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래, 지금에 집중하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