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속 그녀를 보며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순간을 떠올리는 일과 미쳤다고 말하며 쉽게 잊고 마는 것, 그 사이의 간극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녀는 같은 색의 옷을 입고 같은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들고서 같은 구호를 뱉으며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걷는 그녀들을 자주 만나왔을 것이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서, 활자 속에서, 우뚝 선 건물들 틈 사이나 넓은 광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모여 앉아 당연하고도 완벽한 문장을 가장 큰 목소리로 내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그 말을 오래도록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곤 가장 쉬운 방식을 찾아 그녀를 매도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라며 그녀를 설명하는 일은 네가 생각하기에 가장 적절한 수식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이름을 안다면 그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그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취미나 취향, 혹은 미래. 그런 것이 있다는 걸 네가 알고 있다면. 너는 같은 색의 옷과 구호, 마스크에 가려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을지라도, 수많은 역사 속에서 나는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고야 만다. 너의 그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나는 왠지 그녀의 이름을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