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기대”도 없고 “어제”도 없다면 달리 말해 미래도 없고 과거도 없다면 그리하여 우리에게 수락된 시간이 다만 현재뿐이라면 삶은 대체 가능할까? 그리고 그런 삶은 정녕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런데 이런 질문들은 생각해 보면 지극히 속화된 윤리나 신념에 지나지 않는다. 왜 아니겠는가. 앞에 적은 질문들은 어쨌거나 현재를, 미래를 위해 복무하거나 과거를 복기하는 시간으로 철집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냉정하게 적자면 “기대”와 “어제”로 에워싸인 삶이란 실은 현재를 소거해 얻은 바다. 이은기는 아마도 여기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녀는 “기대 없이 어제 없이” 오롯이 현재를 쓴다. 그래서 이은기가 쓴 문장들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지도 않고 과거를 되돌아보지도 않는다. 믿기지 않을 만큼 이은기의 문장들은 자신이 불현듯 솟아오른 자리에서 매번 고립을 자청한다. 이은기의 시가 낯선 까닭은 무엇보다 이 때문이다. 요컨대 이은기의 시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접촉해 보지 못한 “진짜” 현재가 단단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놀라워라. 그 “진짜” 현재는 기이한 “깊이”를 가지는데 역설적이게도 현재가 “깊이는 없고 둘레만 있는 연못”과 같기 때문이다. “둘레만 있는 연못”이 지니는 “깊이”란 물론 실제 깊고 얕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이때 “깊이”는 깊이가 사라진 깊이이고 그래서 “둘레만 있는 연못”은 무엇이든 빨아들이고 감당할 수 있는 도저한 심연으로 작동한다. 에두르지 않고 말하겠다. 이것이 바로 시다. 이은기의 시를 읽으면서 매혹되었던 생경하나 충만한 미감의 정체를 이제는 알겠다. “비어 있는 곳에서 물줄기가 솟구치고 음악이 나온다”. 단연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