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을 너무 사랑하면 제가 아픈 법이다. 붙잡는 손목을 뿌리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를 잡아 세우는 것은 형편없는 것들, 이상하고 억울한 것들, 버려진 것들이다. 제 손목도 파리하면서, 제 자신의 완연도 아득하면서 그렇게 속절없이 멈춰 서서 형벌인 듯, 속죄인 듯 그들 곁을 지키기로 한다. 완연을 꿈꾸나 미연에 머문다.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러기로 한다. 그렇게 그는 미연을 선택하고 그렇게 완연해진다. 그들 곁을 지키며 그는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나고 그늘처럼 넓게 펴진다. 부피도 없이, 높이도 없이, 아무 것도 해하지 않는 종잇장처럼 얇고도 넓은 여백이 되는 것. ‘완연한 미연’이란 그런 의미다. 그 여백으로 접은 종이배에 ‘노래는 참말’이라는 형형한 믿음을 높이 매달고 풍랑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 망망대해를 떠도는 자들에게 가닿는 ‘멀리가는 북소리’가 되는 것. ‘첫 문을 뚫고’ 나오는 누군가를 ‘기다려 받아’주는 것. 그게 그이고 그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