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현의 『호경』은 이러한 '기억 문학'의 계보 위에서 읽히는 작품이다. 저자가 초기 치매 당사자인 '호경'을 만나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한 이 텍스트는 크게 사진과 그림, 자필 메모, 문자메시지 등 주변적 자료를 병치하며 입체감을 만드는 아상블라주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또 한 명의 대표적인 기억의 문학가 W. G. 제발트를 연상시킨다. 기억의 공백과 그 공백을 현재의 위치에서 다시 쓰는 『호경』은 자신의 글쓰기가 기억 문학의 두터운 계보와 맞닿아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의식하며 읽을 때에도, 『호경』은 분명 우리에게 생경한 감각을 선사한다. 그것은 기억이라는 테마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 텍스트만의 특정한 태도가 책의 형식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1장에서 7장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호경』이 시점과 서술 형태를 포함한 자신의 모습을 매번 다른 형태로 변주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장식 같은 것이 아니다. 『호경』이 수행하는 변주는 기억의 빈 자리를 새로운 서사 생성의 원리로 삼는 작품의 미학적 장치인 동시에, 기억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