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은 시력詩歷이 늘어감에 따라 욕심도 커지기 마련이지만 박수현의 겸손과 중용의 의태意態는 늘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모범적이다. 굳이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이 시집의 모든 글이 곧 그녀이고, 그녀의 生이 곧 시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삶의 ‘주름과 기억’을 시인이 어떻게 되새김하고 있는지는 이성혁 평론가의 멋진 해설을 탐독하면 될 터, 나는 단지 그 주름을 만들어낸 원천적 심상에 쓸쓸한 눈길이 간다. 시집 전체를, 혹은 그녀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상실’의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잃어버리고 없는 것, 그리고 곧 잃어갈 것들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도난당한 나’라든가 ‘금이 간 유리’라든가, 낡아가는 ‘묵헌종택’ ‘돌아가신 어머니’나 ‘오탁번 선생’ 등. 그러니까 지금 그녀의 걸음에 동력이 되는 것은 실상 ‘상실’인 셈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읽는 이의 마음에도 가닿았으면 한다. 흔들림에 맞서 詩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는 시인께 경의를 표하며, 슬픔이 어떻게 주름이 되는지, 그리고 그 주름이 어떻게 기어코 다시 우리를 일으키는 힘이 되는지, ‘아코디언처럼 접혔다가 수평선처럼 쭈욱’ 펼쳐질 그녀와 우리의 미래를 지켜볼 참이다. 아, 첨언 한 마디, 시가 너무 길어지는 시절에 곳곳에 놓인 짧은 시들이 ‘납매臘梅 한 포기’처럼 눈길을 끈다. 요런 수작秀作들만 모여 있는 또 한 권의 시집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