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樵霧 柳承畦 선생은 1921년 1월 4일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柳興烈 선생과 成玉伊 여사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관향은 文化, 본명은 在萬.
1956년 <自由文學>지에 李無影 선생 추천으로 문단에 등장, 농촌 농민 제재소설 창작에 일관하여 중단편 「貧農」 「두더지」 「아주까리」 「느티나무」, 장편 「屈辱日誌」 「愛鄕曲」 「푸른 벌」 등 150여 편의 소설들을 발표하였다. 주로 가난한 농민의 한과 농촌사회의 구조적 모순, 일제 강점기 농민의 실상을 표출하여 전환기 농민문학을 활짝 꽃피우고 한국문학사를 빛내었다.
향리에서 필생의 장편소설 「떠꺼머리」를 탈고한 후 1993년 9월 16일 젖은 붓을 던지고 추소리 호반에 누웠다. 뒤따라온 미망인 金顯玉 여사와 함께. 슬하의 惠貞 麟植 남매는 성가하여 농업과 교직에 임하고 있다.
흙의 작가 류승규 선생은 <흙의 문학상> <흙의 문예상> 그리고 제1회 <한국농민문학상> <옥천문화대상>을 수상하였고 창작집 『農旗』 『農地』 장편소설 『춤추는 山河』 『흙은 살아있다』 『익어가는 포도송이』 등의 저서를 남겼다.
- 「소설가 류승규 문학비」 비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