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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 7
농지(農地) / 9 곡예(曲藝) / 85 착오(錯誤) / 118 모우비정(慕牛悲情) / 146 종점(終點) / 173 두더지 / 200 지나간 얘기 / 225 순례(順禮) / 245 작품 해설 / 262 柳承畦의 농민소설 / 田本秀(전 근명고 교장) 연보 / 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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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을 댓돌에 털어 보고 철사 꼬챙이로 대통을 후벼 보고 했다. 그러는데도 어쩌자고 들썽해지기만 하는지 몰랐다. 방금 전에 피웠기 때문에 별로 피울 생각도 없는 담배를 피워 물기 위해 대통에다 담배를 오깃자깃 담았다. 웬 거미 한 마리가 천장에서 죽 내려오더니 봉쇠 눈앞에 와 딱 멈추었다. 올라가지도 더 내려가지도 않고 대롱거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거미 구경하는 사람같이 얼마간을 살펴보고 있었다. 순간 야릇한 생각이 머리 한 귀퉁이에서 피어올랐다. 거미의 행동이 당장 닥쳐올 숨긴 벼에 대한 결과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거미가 줄을 타고 다시 올라가면 숨긴 벼가 발각되지 않고 무사한 것이고 땅바닥으로 떨어질 때에는 불리한 징조라는 생각이었다. 과연 거미가 어떠한 행동을 취할 것인가 싶어 자못 초조하기까지 했다. (올라갈 것인가, 내려갈 것인가?) 순간의 심정은 심오한 종교이기까지 했다. 과연 거미는 용케도 보이지도 않는 줄을 타고 기어올라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에누리없이 지켜보았다. 떨어지지 말기를 안타까이 바라며― 천장에까지 오른 거미는 저의 안식처인 듯한 자네발나무 곁에 가 자세를 멈추었다.
---「농지」중에서 그제야 밤골댁은 급히 달려들었다. 쎄미를 후려치려고 하던 조순이는 재빨리 물러서며 밤골댁 눈치를 살폈다. 쎄미는 딴 힘이 나는 듯 덤벼들고……. 그러나 밤골댁은 조순이가 아니고 쎄미를 거듭거듭 내려 조졌다. "못써 못써, 나빠―." 밤골댁은 거의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나오는 대로 부르짖었다. "아―ㄱ 망할 놈의 할미, 왜 날 때려 힝―." 쎄미는 어찌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더듬거리다 날카로운 밤골댁 눈과 마주치자 울면서 도망쳐 버렸다. ---「착오」중에서 별장을 찾아드는 승용차가 미끄러져 지나간다. 빗물이 두 사람 아랫도리에 튀어 박힌다. "비켜 줘야지. 윽, 어―하하―." "아무렴. 썩 비켜야지. 삐컥―허―." 두 사람은 아주 넉넉하게 비켜주었다. 어설프게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비틀 자꾸만 걸었다. 인적도 없다. 부슬비는 계속 내리고. 우렁찬 통금 사이렌이 울렸다. "아, 저 사이렌 소리. 울어라. 더 큰 소리로―. 목이 터지도록 울어라. 울어―." "……그렇지. 온 천지가 뒤흔들리게 크게 울어라. 맘껏 울어라." 두 사람은 비틀비틀 자꾸 걸었다. ---「종점」중에서 구비 토비에 있는 지렁이, 굼벵이 등을 잡아먹기 위해 근방의 두더지는 다 모여 들은 듯 처음에는 한쪽에서 약간 일구는 것 같더니 이제는 온 논배미를 마구 일구어 놓는 것이 아닌가. 일구면 밟고 밟아 놓으면 일구고―틈 있는 대로 온 식구가 매달려 밟았지만 밟으면 밟을수록 더 기승을 부렸다. 그렇게 온 식구가 전심을 기울여 밟아 주는데도, 한 번 일군 곳은 뿌리가 들떠서 며칠 동안은 새들새들 맥을 쓰지 못했다. 혹시 잊고서 밟지 않고 그대로 버려두면 추위와 바람에 뿌리가 말라서 잎이 누렇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궈도 꼭 보리골을 일구는 것이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짐승의 피해라면 밤낮으로 지켜도 좋겠는데, 식전 저녁으로만, 땅 속에서 일구기 때문에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놈이었다. 백날을 논배미에 붙어 있어도 눈독을 들여 놈이 일구는 곳을 찾기 전에는 언제 어디서 일구는지조차도 모르니― 정말 음으로 사람을 골탕먹이는 놈이었다. ---「두더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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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출신의 농민 소설가 류승규 선생(1921~1993)의 30주기 기념 작품집이다. 이 소설집에는 작가의 필생의 역작인 중편소설 「농지(農地)」와 단편 「곡예(曲藝)」 등 총 8편의 중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평생 동안 가난한 농민의 삶과 농촌 상황의 구조적 모순을 형상화하면서 농민문학의 외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작가는 흙의 주인인 농민이 겪는 가난과 억압의 현장을 진실하게 작품화했고 그 속에서도 희망과 정열, 해학을 잃지 않고 정직한 ‘흙의 정신’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지난 2003년 10주기 때는 「빈농(貧農)」, 2013년 20주기에는 「아주까리」라는 작품집을 출간한 바 있다. 이번에는 그동안 나온 여러 작품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을 중심으로 「두더지」라는 이름으로 소설집을 엮게 되었다. 이번 30주기 작품집에 수록된 소설은 70년대 초 산업화 결과 도시 중심의 삶으로 변모해 가면서 농촌이, 농민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구수한 토착어와 특유의 묘사를 통해 속속들이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가 50대였던 이 때는 70년대 농촌의 전모를 광역대 안테나를 세워 파헤치면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기이다. 어느 해에는 장편소설을 연재하면서 중편, 단편 10여 편을 쏟아낼 정도로 열정을 보인 시기이기도 하다. 류승규의 농민문학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저술한 전본수 선생(전 근명고 교장)은 작품집 「두더지」 해설에서 ‘작가는 시종일관 농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농촌의 문제와 성실한 농민의 상을 소설에 사실적으로 형상화하였다.’고 개괄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농민을 긍정하고 변호하고 구원하려 했으며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사실적으로 고발했다. 25년 농사의 일로 농촌에 대한 투철한 문제 의식을 갖고 농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허구적 조작 없이 솔직하고 진실되게 형상화한 류승규 특유의 농민소설은 한국문학의 공간을 보다 넓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류승규 문학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충북 옥천 관성공원에는‘소설가 류승규 문학비’가 있고(1999년 건립) 2003년 10주기 때는‘柳承畦 문학상’을 제정하여 올해로 열여덟 번째 수상자를 배출하게 되었고, 이와 아울러 ‘柳承畦 문학제’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올해 제 18회 류승규 문학제는 11.3(금) 오후2시 옥천 관성공원 류승규 문학비 옆에 있는 옥천문화원 문화교실에서 열린다. 올해 류승규 문학상 수상자는 동양적인 서정성을 산뜻한 이미지로 표현해 온 엄한정(1936년~ ) 시인으로 수상작은 「엄한정 시전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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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류승규 씨는 「빈농」「농기」「예순이」「눈보라」「판쇠」 등의 많은 작품을 통하여 한국 농민 생활의 가장 친근한 증언자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류승규씨의 작품은 거의 예외 없이 농민 소설이며, 그것도 일제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농촌 상황을 아무런 가감이 없이 묘사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20여 년간이나 농촌에서 직접 농사를 생업으로 지낸 류승규 씨에게는 이 경험이 문학 이전에 민족적 수난의 연속이었으며, 가난과 억압의 실감이었다. 이래서 씨의 소설은 다른 농촌 소설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농민의 가난=민족의 비극=사회적 정치적 책임이라는 절실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류승규 씨는 농촌을 가장 비서정적인 경제 집단으로 파악하여 작품화하고 있으며 이 점은 앞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될 것이다. - 임헌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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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사람들이 너무 못 살고 굶주리는 게 안타까워 문학을 해야겠다고 작정했었다. 이무영 선생에게 농민문학을 배웠지만 그런 면에서 정신적인 태도가 달랐던 것이다. 스승과 제자이면서도 문학은 판이하였다. 류승규 선생의 소설은 체험을 바탕으로 농촌의 실상을 파헤치고 고발하고 비판하는 것이었다. 체험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최서해(崔曙海)의 「그믐밤」「탈출」류의 경향에 가까웠다. 또한 그의 소설 전반에는 농민과 농촌에 대한 애정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그러기에 지주와 일제의 수탈에 대해 극심한 적대감을 보이고 있고 근대화에 의해 농촌이 피폐해져 가는 것에도 비판을 하고 있다. 역사의식도 어느 농촌 소설가보다 다른 데가 있었다. 일제뿐만 아니라 6·25를 일으킨 소련과 이 땅에 군대를 보낸 중국과 미국에 대해서도 모두 조선 땅에서 나가라고 외치는 등 세계사적 안목에서 이 땅의 농민들의 수난과 비극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편집 「농지」가 이러한 비판성 때문에 1987년 출판 과정에서 곤란을 겪기도 했고 「덫」에 나오는 반미 의식이(이미 [월간 문학]에 발표된 것이긴 하지만) 단행본으로 엮어 내는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류선생의 중편 「농지」는 그의 이러한 문학적 특성이 잘 나타난다. 농토에 대한 봉수 영감의 끈질긴 애착, 근대화로 인해 피폐한 농촌, 젊은이들의 이농, 6.25로 인한 돌쇠 형제의 죽음, 일제의 억압과 수탈 등 근대사의 얼룩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류선생의 농촌 실정의 사실적인 표출에 의해 실감을 더한다. 농촌의 농사짓는 방법이나 농기구, 산과 들의 풀과 나무, 충청도 내륙지방의 토속적인 방언, 농부들의 내면 심리 등이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 이동희 (소설가, 단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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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살아 온 작가와 농촌에서 낳기만 하고 커서는 도시 생활만 했던 작가는 이러한 표현 묘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소설 작품이 허구에의 진실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작가, 그 자신의 진실한 체험에 따라서 독자의 감동 차원이 달라진다. 소설을 흔히 말하기를 「어떤 사건의 줄거리를 이야기로 풀어놓은 것」이라고 하지만 무조건 사건 구상에 의하여 그 줄거리만 풀어놓는다면, 이 소설이 일시적으로 흥미는 있을지 몰라도 예술 작품으로서 문학작품으로서의 영원성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 속에 직접 뛰어든 작가와 간접(사건 구상으로써)적으로 뛰어든 작가와는 그 기본적인 사상, 정신부터 다르다. 류승규는 어떤 작품에서도 간접이 아닌 직접 체험으로 작품 구성을 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깊은 곳에서 실감과 감동을 받게 된다. - 김해성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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