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원장은 내가 졸업한 금호고등학교 후배이다.
그는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떠들지 않았고,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가 한의학의 길에 들어선 것은 자연스러운, 태생적인 것일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나는 검찰과 국회를 거쳤고, 그는 한의원의 문을 열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나는 몸이 무겁거나 어딘가 균형이 흐트러진다 싶을 때면 그에게 연락을 한다. 약을 달라고 하기보다 몸의 상태를 물어보는 식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먼저 이렇게 묻곤 했다. “요즘 마음은 좀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의아했다. 몸이 아프다고 했는데 마음을 묻다니.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 질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삼십 년 동안 속상한 일을 참아 온 사람, 미안하다는 말만 하며 살아온 사람, 화를 안 내는 것이 아니라 참고 있었던 사람. 그들의 몸은 검사에서 뚜렷한 이상이 나오지 않는데도 아팠다. 김영삼 원장은 그 아픔의 뿌리가 몸이 아닌 마음에 있다는 것을 오랜 진료 경험으로 보여준다. 그가 책에서 쓴 대로, “사람을 가장 오래 괴롭히는 것은 병이 아니라 혼자 견뎌 온 시간”이다. 마음에서 몸으로 흐르는 길, 그 길 위에 쌓인 울화가 결국 병이 된다는 것을.
그는 또 이렇게 썼다.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은 대개 세상의 사건이 아니다. 그 사건을 붙잡고 놓지 않는 마음이다.” 한의사의 말이라기보다 수행자의 말에 가깝다. 사실 그는 참선 수양을 하는 사람이다. 책 속에 운문선사의 화두를 1년 넘게 붙들고 씨름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건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지는 삶의 태도 그 자체다. 그를 만나면 맑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의사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이치를 찾고, 그 원리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 흐르는 것은 흐르게 두고, 떠나는 것은 떠나게 두는 것. 그의 삶이 그렇고, 그의 진료가 그렇다. 이 책에 담긴 “건강이란 막혀 있던 것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문장은, 그가 읽은 경전의 언어가 아니라 수천 명의 환자를 앞에 두고 체득한 언어다.
나 역시 오래 참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검사 시절의 긴장, 정치의 소모전, 새로운 길을 여는 과정에서의 고독. 돌이켜 보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자꾸만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건강이란 몸을 잘 돌보는 기술 이전에, 마음속에 쌓인 것을 제때 흘려보내는 지혜”라는 구절에서는 한참 손이 멈추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다.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 책은 조용히 되묻는다. 참아야 할 것을 참는 것과, 참지 말아야 할 것까지 참는 것은 다르지 않겠느냐고. 그 물음 앞에서 나는 한참 멈추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