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장씨仁同張氏, 玉山張氏는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仁同을 본향으로 하는 성씨이다. 인동지역은 신라시대부터 현으로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도 인동현仁同縣으로 현감이 다스리다가, 천생산天生山의 요새화로 인하여 1604년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로 승격되어 조선 말까지 지속되었다. 1895년 인동군仁同郡으로 개칭하고, 1914년 칠곡군 인동면仁同面이 되고, 1978년 구미시에 분산 소속되었다가 1983년 구미시 인동동仁同洞이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옥산(玉山)은 천생산의 주산으로, 인동도호부 시절부터 인동 지명의 이칭으로 쓰였다. 그러므로 인동장씨와 옥산장씨는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인동장씨는 상장군계와 직제학계의 두 갈래가 있는데, 대부분은 상장군[해제] 칠인정七印亭의 사적事蹟과 기록記錄 21계[張金用系]이다. 상장군계 인동장씨는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아들 장선張善이 고려 문종 시절에 금오위 상장군을 지내고 인동에 거주하면서부터 그 후손들이 본향으로 삼았다.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에 들어와 가문이 번창하여 조선시대에 문과와 무과에서 급제자 수백 명이 나오는 등, 수많은 명현과 명관이 배출되어 혁혁한 문벌이 되었다. 직제학계[張桂系] 인동장씨는, 고려 충렬왕 시대의 학자 장계張桂가 예문관 대제학을 지내고 옥산부원군에 봉해지면서 그 후손들이 인동을 본관으로 한 데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소수이다. 2015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현재 남한에 사는 장張씨는 총 992,721명인데 그 중에서 인동仁同장씨가 666,652명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므로 50여 본관을 가진 장씨 중에서 인동장씨는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큰 성관이다.
이들은 주로 경상북도 구미, 칠곡, 김천, 문경, 안동 등 각 시군에 거주하고 있고, 경상남도, 전라남북도, 강원도 등에도 다수 세거하였는데, 현대에 와서 수도권 인구집중으로 인하여 서울과 경기도권에도 많이 분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