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빛나는 건 전부 문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 다리를 감싼 팔을 풀고 한 발 한 발 어둠을 쓸며 다가갔다, 삐거덕 삐거덕, 빛과 어둠이 갈리면 이런 소리가 날까, 서로 맞닿으면 아름답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데, 찻잔들 속에서 빛나는 팔각 찻잔, 네모진 여덟 면이 문처럼 보였다, 조심스럽게 찻잔을 들어올렸다, 나를 높이 데려가려는 마음으로 _'한 모금의 문' 에서
만약에 우리가사랑의 한계점을 넘어 헛돌더라도멈출 줄 아는 지혜 따위는신의 강에 던져버리자그 강도 언젠가우리가우리를 잃었던 날들처럼영원성을 잃고서글픈 바닥을 보일 테지만괜찮아,우리의 성급한 이성은잠든 악마의 서랍 속에 넣고위험한 놀이를 하듯다시 운명을 꺼내면 되니까그리고 우리가 가진가장 희고 유순한 마음을날개처럼 달아주는 거야소멸 직전의 진심처럼의미 없음의 더 없을 의미래도우리에겐거짓이 무용한 두 심장이 있고내겐이별이 없는 지도가 있으니까'반복적으로 관측되는 이성' 에서
오피스텔 지하 단칸방 경비실에 우두커니 앉아 들락거리는 사람을 보고 또 보고 앉았다 일어났다 혼자는 반복을 거듭한다남은 몇 개의 이로 물컹한 두부를 씹다가금이 간 벽 거울에서 어둑한 얼굴을 맞닥트리고거울 밖의 혼자와 거울 속의 혼자가파르르 몸을 떨었다혼자는 서둘러 전기 포트를 켰다물이 끓어오를 때까지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포트 주둥이 밖으로 물방울이튀어오를 때혼자야?'일용할 혼자' 에서
괜찮아 괜찮다, 하면무엇이 자라날까희망은 돌처럼 딱딱해질까돌처럼 희망이 단단해질까너를 내 꿈속으로 데려갔다울지 않는 나무가 자라는 곳으로뿌리깊은 웃음만 무성한 곳으로너는 시큰둥한 얼굴로 앉아 있다머리 위로 쿵, 새알 같은 것이 떨어졌다이리저리 굴려도 깨지지 않았다죽어가는 나무들 사이로 내달리는 너절벽 앞에 다다르자그것을 힘껏 차올렸다나는 네 귀에 대고 속삭였다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한 뼘의 우주'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