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9월 14일,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이론물리학자,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로서 업적을 남겼다. 그는 평생 프랑스의 여러 지방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쳤다. 1887년부터 1893년까지 릴에서, 그 뒤로 1년간 렌에서 짧게 머물렀고, 마침내 1894년 10월 보르도 대학교에 부임했다. 고등교육국장 L. 리아르가 약속한 대로 이 새로운 부임지를 끝으로 파리 소르본에서 남은 교수 경력을 마무리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가 ‘프랑스 공식 과학의 교황들’이라 부르던 이들의 배척을 받아 보르도를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1895년 보르도 대학교의 이론 물리학 교수로 임명되어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 직위를 유지했다.
그는 1892년 결혼한 지 불과 2년 만에 아내의 죽음이라는 비극에 깊이 상처받은 채 고독하게 살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집중적인 연구를 이어갔으며, 드물게는 오드주 몽타뉴 누아르 산기슭의 카브레스핀에 있는 별장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연구가 인정받지 못하고 아이디어가 확산되지 못하는 세월이 길어지자 다소 어두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레지옹도뇌르 훈장 등 공식적인 수상 제안을 모두 거절했으며, 어디까지나 물리학자로 인정받는 것에 고집을 보였다. 이론가로서 인정받으려 한 의지는 그가 과학사 교수직으로 콜레주 드 프랑스에 후보로 추천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그의 뚜렷한 독립적 사고와 함께 불굴의 정신을 보여준다.
피에르 뒤엠은 저작 대부분을 보르도 시절에 집필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이전에 《철학잡지》, 《크리스트교 철학 연보》 등 다양한 학술지에 산발적으로 게재된 바 있다. 1906년 단행본으로 처음 출간된 이 책 또한 1904년 4월부터 1905년 7월까지 《철학잡지》에 게재된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