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이전

작가파일

송병순
국내작가 문학가
작가이미지
송병순
국내작가 문학가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은 구한말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우국지사다. 자는 동옥(東玉), 호는 심석재(心石齋)이며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대전 회덕에서 우암 송시열의 9세손으로 태어났다. 큰아버지인 송달수와 외삼촌 이세연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예학을 깊이 수학하며 전통적인 선비의 길을 닦았다. 1888년 49세의 나이에 의정부의 천거로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894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는 등 국가적 위기와 치욕을 겪자, 그는 벼슬의 뜻을 완전히 접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활산에 강당을 세우고 수많은 문인을 지도하며,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도 굳건한 민족의식과 선비 정신을 고취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경술국치를 당하자, 비통함에 빠진 그는 산봉우리에 올라 투신하여 순국하려 했으나 문인 김용호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두문불출하며 망국의 뼈아픈 슬픔을 시로 달래던 중, 일본 헌병대가 가져온 은사금을 매섭게 질책하며 거절했다. 1912년 일제가 회유책의 일환으로 경학원(經學院) 강사직을 제안했으나 이마저도 단호히 물리쳤다. 결국 그는 일제의 치하에서 구차하게 생명을 잇는 대신 대의(大義)를 지켜 순국할 것을 결심하고, 유서를 남긴 채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며 유학자로서의 꼿꼿한 절의를 완성했다.

저서로는 35권에 달하는 방대한 문집인 《심석재 선생 문집(心石齋先生文集)》을 비롯해, 《독서 만록》, 《학문 삼요》, 《사례 축식》, 《용학 보의》, 《주서 선류》 등 다수의 학술서가 전한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에게 한마디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