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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유람 기행병이 심해져 무료하기에 도정절의 〈형영신〉에 차운함숙부의 석리복거시에 차운해삼가 곧장 석리강회의 운에 차운해12화첩에 지음거미매미두 날짐승의 말에 답함밝은 달에게 물음소나무와 국화정원 가꾸는 이를 문책함기로행가을밤주자서를 읽고 우연히 절구 두 수를 얻었기에영족와경태 송첨인의 만취당에 두 수 제함갑신년(1884) 의제 개혁 후 되는대로 절구 한 수 읊음9월에 강회를 열어 즐긴 후 주자와 송시열 두 선생의 운을 차운해 공경히 두 수 지음봄의 끝자락에 객이 찾아왔기에무자년(1888) 정월 대보름에 손아 천귀에게 보여 줌을미년(1895) 겨울 되는대로 적음교동에서 돌아오는 길에 절구 한 수 읊음김영준 군이 보여 준 시에 곧장 화운함침류정상산에서의 여행 밤중에되는대로 읊음무신년(1908) 정월 그믐밤에 꿈속에서 지음화양동에 들어가 화현을 넘어 지음읍궁암?선조이신 문정공께서 바위에 새긴 운을 공경히 차운해암서재?문정공께서 현판에 쓰신 운을 공경히 차운해파곶?정문공이 지은 시에 삼가 차운해세심대에 적음여름밤신해년(1911) 8월 뜨락 앞 분재한 연꽃이 가득하기에 우연히 느낀 바 있어소자유의 소요당 시를 읽고 그 운에 따라 형제를 생각하는 마음을 적어 두 수 지음버들을 심고서 되는대로 읊음그윽한 흥취 두 수여름날 든 생각죽계의 옛 살던 곳을 지나며 두 수 지음가을날 즉석에서중추절 달밤에동작나루를 건너며율옹의 풍악시를 읽고 느낀 바 있어 지음동중서의 책문을 읽고 감응 절구 한 수 읊음두초당을 읊은 시《창려집》을 읽고서을축년(1865) 9월 상순 정일에 만동묘를 흠모하며 감회를 적은 세 수병인년(1866) 가을 9월 1일에 금오산성을 유람함약사암대혈 폭포두견새흰 제비를 보고 한 수 지음미원 도중에향적봉에 올라가을날 조용히 읊음돌을 가다듬어 벼루를 만들어 바로 절구 한 수 지음오산정사 팔경여름밤스스로 적음스스로 경계함즉석에서 지음가을날 그윽한 흥취우연히 읊음이화정에서 비에 막힘우연히 읊음장마되는대로 읊조림한천 제영 12첩물회오리인월담백련암자계 도중에횡천 도중에기축년(1889) 한여름에 되는대로 읊음을미년(1895) 겨울 탄식하며 절구 두 수 읊음화분에 기른 연꽃 두 수취수정에서 밤에 모여고견암해인사모현정태원암산천재중산초당에 제함문창대벽계암에서 밤에 앉아산에서 내려와 읊음청학동칠불암벽소령수승대삼산재에서 읊어 주인 자정 권대춘에게 줌무신년(1908) 정월 대보름에 되는대로 읊음산당에서 회포를 적음대명홍파곶선유동경술년(1910) 정월 초하루 느낀 바 있어 두 수 지음신선 바위에서 오후에 읊음비 갠 뒤가을밤에 잠이 오지 않아일제의 돈을 물리치며정월 대보름에 석장에서 감회를 읊음비 온 뒤 되는대로 읊음임술년(1862) 7월 16일에 강선대에 올라가을밤찬 매화밤에 차가운 샘 근처에 앉아예유 김종성의 집에 제함산곡의 그윽한 거처를 방문해포도먹으로 그린 매화되는대로 지음화림동 거연정에 지음세심정에 올라 판상에 차운함향산에서 벗과 함께 돌아와달 아래 작은 모임심석재 스스로 읊음스스로를 경계하며 읊음금산을 지나다 느낀 바 있어창을 막고 우연히 지음성스러운 은혜에 답함달 아래 홀로 앉아, 이웃이 와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작품을 낭송하기에 그 운을 바로 차운함양호에 배를 띄우고서봄날 실없이 읊음여름날 되는대로 적음산곡의 새 별장에 지음시냇가 누대에서 밤에 앉아가을날 되는대로 읊음한가로운 생활입춘일에 육방옹의 운을 써서황덕봉에 올라석탄정에 지음여름날맑게 개어 기쁘기에모여 이야기함자풍당에서의 담화손주들을 독려하며감회를 적음제목 없음해설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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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망국의 비애 속에서 피어난 선비의 꼿꼿한 절의(節義)우암 송시열의 9세손이자 구한말의 강직한 유학자였던 심석재(心石齋) 송병순(1839∼1912). 그는 국운이 비참하게 기울어 가던 격동의 시대에 타협을 거부하고 지식인의 참된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의 치욕 이후, 그는 벼슬의 뜻을 접고 강당을 세워 후학 양성과 민족의식 고취에만 매진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산봉우리에 올라 투신을 시도할 만큼 나라 잃은 슬픔에 통탄했던 그는 일제의 은사금을 질책하며 단호히 물리쳤다. 1912년 일제가 경학원 강사직으로 회유하려 하자 이마저도 거절하고, 대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순국하며 유학자의 올곧은 절개를 역사에 새겼다.《심석재 시선》은 그의 방대한 저서인 《심석재 선생 문집》에 수록된 한시 525제 637수 가운데, 문학적·역사적 가치가 돋보이는 141제 173수를 엄선해 현대어로 번역한 책이다.그의 한시는 자연에 자신의 심사를 투사한 서정시부터 벗과의 석별을 나눈 증별시, 유람의 감흥을 적은 기행시 등 주제와 장르 면에서 매우 다채롭다. 특히 글자 수를 석 자에서 일곱 자로 점진적으로 늘려 쓰는 12첩 제화시 등에서는 그의 뛰어난 시적 기교와 문학적 깊이를 엿볼 수 있다.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핵심은 뼈아픈 시대의 증언이다. 조선의 몰락과 일제의 국권 침탈이라는 비극적 현실 앞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가슴 찢어지는 비애와 통분이 시편마다 짙게 배어 있다. 동시에 그 혼란한 난세 속에서 유학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올곧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다짐을 담아냈다.《심석재 시선》은 단순한 한시 모음집을 넘어, 망국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쳐 낸 한 지식인의 투쟁기이자 피 끓는 내면의 기록이다. 구한말의 사회상과 사대부의 고뇌를 조망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사적 사료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지식인의 책임과 삶의 태도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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