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정조 시대 노비 출신의 저명한 시인. 성은 정(鄭)이고 이름이 봉(鳳)이다. 나무꾼으로 생계를 유지하여 초부(樵夫)로 불렸다. 훗날 경기도 광주로 편입된 양근군 남종면 수청리(水靑里)에 거주하여 수청초부(水靑樵夫)라고도 불렸다. 소론 명문가인 함양 여씨(咸陽呂氏) 여성제(呂聖齊) 가문 소유의 노비였는데 여춘영(呂春永)이 그의 창작 능력을 인정하여 1753년 어름에 양인으로 풀어 주었다. 젊은 시절부터 시를 잘 지어 명성이 높았다. 1760년대 초기부터 경화세족 사대부에게 인정받아 당파를 가리지 않고 교유하며 시를 주고받았다. 특히 김상묵(金尙默)과 친분이 깊어 둘이 주고받은 시가 많은데, 그 시들을 모은 『초창시권(樵唱詩卷)』이 1769년에 편찬되었다. 또 지방관이 된 사대부의 초청을 받아 수원과 안동, 금강산을 여행하고 다수의 시를 남겼다. 76세 되던 해인 1789년 늦가을 9월에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현재 83제 106수가 수집되었다. 한 시대의 명사로 그의 작품과 행적은 40여 종의 문헌에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