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은 명나라 중기의 관료이자 사상가로, 본명은 왕수인(王守仁)이다. 고향 회계산의 양명동에서 지낸 데서 양명이라 불렸다. 회시에 두 번 떨어진 끝에 1499년 진사에 급제했다. 1506년 환관 유근에게 붙잡힌 관리들을 풀어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정장 사십 대를 맞고 귀주 용장의 역승으로 쫓겨났고, 1508년 그곳에서 훗날 ‘용장오도’라 불리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남감 순무로 부임해 수십 년 묵은 도적을 평정했고, 1519년 영왕 주신호의 반란을 서른닷새 만에 진압했다. 1527년 광서 사은·전주의 난을 맡아 수습한 뒤 돌아오던 길에 강서 남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심즉리·지행합일·치양지로 요약되는 그의 가르침은 양명학으로 이어졌고, 제자와 나눈 문답과 편지는 『전습록』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