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시간이었어요. 이 책에 담긴 밤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하지만, 땅속에서는 가느다란 균사들이 부지런히 뻗어 갑니다. 물과 흙, 나뭇잎과 뿌리를 만나며 서로 이어지고, 자신이 피어날 때를 준비하지요. 버섯은 어느 날 갑자기 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작은 훨씬 오래전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를 꿈꾸고, 어른들은 한때 꿈꾸었던 자신을 돌아봅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가 되고 싶고, 아직 닿지 못한 곳을 바라봅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마음이 급해지고, 하루를 살아내느라 오래 품어 온 꿈을 뒤로 미루기도 하지요. 하지만 삶에는 정해진 개화기가 없다고 믿습니다. 한 번의 피어남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닐 테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다음 모습을 준비합니다. 긴 밤 끝에 이 책을 완성하고 그림책 작가로 첫걸음을 내디딘 저 역시, 이제야 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저마다의 땅속에서 자신의 모양과 속도로 자라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