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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젠가 피어날 순간을 향해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한국그림책출판협회 2026 그림책 공모전 당선작§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야 “아직 아무것도 없네.” 땅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아주 어두운 땅속. 구불구불한 길처럼 보이기도 하는 생명체가 열심히 몸을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생명체는 땅 위에서 들려오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지요. 아직은 때가 오지 않았거든요. 대신 늘 그랬듯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수분과 영양분을 모으고, 땅속에 사는 다른 생명체들을 조심조심 비켜 가기도 하며 하루하루 흙 속으로 퍼져 나갑니다. 땅속에는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으니까요! 도대체 이 생명체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이토록 부지런히 움직이는 걸까요? 나도 언젠가 피어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보이지 않아』는 처음부터 생명체의 진짜 정체도, 오랫동안 준비 중인 일의 목적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어두운 땅속에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모습뿐입니다. 어떤 일을 오랫동안 준비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말 내가 가는 길이 맞을까?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혹시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불안해지기도 하지요. 『나는 아직 보이지 않아』는 자신의 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좌절하거나 의심하지 말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힘내라는 말을 앞세우는 대신, 오늘도 열심히 땅속을 누비는 생명체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생명체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보여 주지요.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는 어느 날, 생명체는 오늘이 그토록 기다려 온 날이라는 것을 직감합니다. 이윽고 땅으로 올라가는 길이 열리자 그동안 모아 온 힘을 다해 세상 밖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짜잔! 내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어.” 알록달록한 갓을 쓰고 통통한 기둥으로 우뚝 선 생명체. 그는 버섯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버섯은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었습니다. 삶에는 정해진 개화기가 없다 마침내 피어난 버섯 앞에 아름다운 밤하늘이 펼쳐집니다. 오랜 노력 끝에 피어났으니, 버섯의 이야기도 여기서 끝나는 걸까요? 이유빈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한 번 피어났다고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며,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도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다음 모습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이 믿음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유빈 작가는 모두가 잠든 새벽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긴 밤 끝에 『나는 아직 보이지 않아』를 완성하여 그림책 작가로 첫걸음을 내디뎠지요. 그 과정을 지나며 자신 역시 이제야 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삶에는 정해진 개화기가 없다고 이유빈 작가는 말합니다. 땅속에서부터 꾸준히 자라난 뒤에야 피어나는 버섯처럼,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만의 개화기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은 존재합니다. 이유빈 작가는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이 말을 건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저마다의 땅속에서 자신의 모양과 속도로 자라고 있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