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8~기원전 19)은 고구려를 세운 시조로 전하는 인물로, 동명성왕이라 불리며 광개토왕릉비에는 추모왕으로 새겨졌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이규보의 「동명왕편」, 광개토왕릉비, 『위서』에 그의 이야기가 전한다. 하백의 딸 유화가 햇빛을 받아 낳은 알에서 태어나 동부여 금와왕의 궁에서 자랐다고 한다. 일곱 살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 번 쏘아 백 번 맞혔고, 부여 말로 활 잘 쏘는 이를 주몽이라 하여 이름이 되었다. 금와의 아들들이 그 재주를 시기해 죽이려 하자 어머니의 권유로 오이·마리·협보와 함께 남쪽으로 달아났고, 다리 없는 강에서 물고기와 자라가 놓은 다리를 건넜다고 전한다. 『삼국사기』 기년으로 기원전 37년, 스물두 살에 졸본에서 고구려를 세웠고 이듬해 비류국 송양의 항복을 받아 그 땅을 다물도라 했다. 기원전 19년 부여에서 찾아온 아들 유리를 태자로 세우고 그해 가을 마흔 살로 세상을 떠나 용산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