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언론인. 1809년 브장송에서 통 만드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이 기울어 학업을 그만두고 인쇄소 식자공과 교정공으로 일하며 독학했다. 1838년 브장송 학술원의 장학생이 되어 파리에서 공부했고, 1840년 『소유란 무엇인가』에서 소유란 도둑질이라고 답해 이름을 알렸다. 같은 책에서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 부른 첫 사람이 되었다.
1848년 혁명 뒤 국민의회 의원이 되었고 이자 없는 인민은행을 세우려 했으나 실패했다. 대통령을 비판한 글로 1849년부터 3년 동안 옥살이를 했고, 1858년 다시 유죄 판결을 받아 벨기에로 망명했다. 1865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