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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내게도 당신에게로 가는 긴 활주로가 필요하다
둘째, 우리는 평생 바라만 보다가 져 버릴지도 모른다 셋째, 이젠 신호를 보내 주었으면 넷째, 그의 전선이 떠나는 날 다섯째, 그대가 끝나는 곳에서 다른 누군가가 시작되고 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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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싶은데 함께 갈 사람이 없다.
혼자 극장에 갔다. 나처럼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친구를 우연히 만난다. 생일 선물을 받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CD와 똑같은 CD를 받았다. 그가 보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통화중이다. 어디에 전화했었느냐고 물으니까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중이었다고 한다. 뭔가 통한다는 것. 행복한 텔레파시. ---p.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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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떠났다.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터미널로 향한다. 지갑에 달랑 차비 정도만 있을 뿐. 옷차림도 긴 부츠에 치마를 입었지만 난 문득 참을 수 없을 만큼 서울을 떠나고 싶어진다. 그래서 난 광주행 버스표를 사 버린다. 새벽에 광주에 도착한 난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나의 전화를 받는 친구. 갑작스런 나의 광주행에도 웬일이냐는 말 한마디 묻지 않고 그냥 마중을 나와 주는 친구가 고맙다. '나 땅 끝 마을에 가보고 싶어' 날이 밝자 친구는 날 땅 끝까지 데려다 준다. 땅 끝에 선다. 그곳에서 육지와 바다가 만나고 있다. 한쪽 발은 육지에 디디고 한쪽 발은 바다에 담가본다. 내 몸은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이 도니다. 이 흔하고 흔한 진리를 깨달으려 난 그 먼 길을 달려왔을까. 육지가 끝나는 곳에서 바다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 '땅 끝'이라는 이름안에는 '바다 시작'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살고 있다는 것. 내가 디디고 서 있는 이 땅 끝에서 저 넓은 바다가 시작되고 저 바다가 끝나는 그 어디쯤에서 새로운 땅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 그래, 끝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일 뿐.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며 난 땅 끝 마을의 고요하고 넉넉함을 가슴에 새겨 넣는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땅 끝에서 시작하고 있던 푸른 바다를 기억할 것이다. 서울에 도착하면 넌 땅 끝처럼 끝나 있겠지만 난 이제 두렵지 않다. 네가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그 누군가가 시작되고 있음을 배우고 돌아가기 때문에. ---p.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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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책과 읽는 책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스타일의 감성시집
이 책은 시와 산문이 섞여 있는 파격적인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어서 여느 시집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건지 보아야 하는 건지 헛갈릴 정도다.
장르도 시나 산문 어느 하나에 국한하지 않고 아예 통 털어 '시,그림,산문집'으로 못박고 있다. 비주얼에 민감한 디지털 세대를 겨냥한 편집 스타일이다.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더 익숙한 이들 세대는 사랑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어느새 달아나 버릴 만큼 바쁜 사랑을 한다. 이렇게 사랑이 바쁜 세대들에게 사랑에 대한 진정한 아픔이 있을까? 그게 그거라는 식으로 사랑을 단순하게 만들지는 않는가. 이 책에는 강하고 역동적인 삽화 안에 한없이 느린 사랑을 감추고 있다. 작은 사물에도 사랑의 돋보기로 한참을 들여다보는 정성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책 한권을 다 읽고 나면 사랑의 무수한 얼굴을 만나게 되고, 긴 소설의 러브스토리를 본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표현하지 않는 깊은 사랑보다는 깊이를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표현하는 사랑에 감동 받는다'는 말을 더 이상 '너 사랑해, 너도 나 사랑하니, 아니면 아니라고 빨리 말해'라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