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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길을 나서다
정도(正道)란? 사도(私道)란? 고정 관념을 넘어서 천명, 도리가 있는 인간 어렵고도 쉬운 중도(中道) 2부 유불(儒佛)의 길 유불(儒佛)의 선입견 깨기 유불의 아레테이아 = 中 유불(儒佛)의 멋과 즐거움 유불(儒佛)은 둘이 아니다 ― 不二論 유불(儒佛)의 뿌리 ― 은일(隱逸)한 공통성 성선, 성악설에 대한 중도(中道)적 태도 성리학 이(理)·기(氣) 논쟁의 허실(實虛) 3부 현실에서 길찾기 보수는 구태요 진보는 혁신인가? 중도(中道)와 중도(中途)의 차이 인문학의 원형 흔하고 평범한 중도(中道) 안갯속의 등불 4부 길의 아레테이아 중도(中道)를 고집하지 않는 중도(中道) 자연(自然) = 중도(中道) 중도(中道) = 행복 행정도(行正道) = 중도(中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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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문사철(文史哲)을 상식 정도의 수준으로 익혔다. 그리고 유불선(儒佛禪)을 겨우 수박 겉핥기 식으로 탐구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감히 동양 사상의 심후한 정신세계를 피력한 것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자기 안에 불성이 있다. 사람은 천명을 담지하고 있다. 생이지지(生而知之)나 곤이지지(困而知之)나 다 하나로 귀결된다. 안이행지(安而行之)나 면강이행지(勉强而行之)나 다 같은 결론에 이른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높은 산도 낮은 데로부터, 천리마보다 조롱말이 목적지에 이른다”는 권면을 깊이 동감하기 때문이다.
동양 정신의 고귀함은 보통의 가치를 높이고 평범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데 있다. 서민과 민중의 삶에 그 따스한 교훈과 시선이 머문다. 교육과 훈육을 통해 보통 사람들을 존중하게 만든다. 그 뜻과 배려가 매우 간단하면서 깊고 넓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가 급변하는 현대사에서 놓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회복하고자 한다. 비유하자면 수박 겉핥기에서 신선하게 잘 익은 속살에 다다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청소년과 어른에 이르기까지 우리 동양 정신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삶을 내실 있게 살고자 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동양의 정수인 유불학을 마땅히 습득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민족 사상의 근간인 전통 정신이 푸대접을 받으며 고사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성을 갈고 닦는 학자와 미래를 짊어질 학인들은 민족 전통 정신과 학문을 모든 지식에 우선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찌 심혈을 기울여 절차탁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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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리스어로 벗어나고 싶은 탈(a)과 저승의 강이며 망각의 물인 ‘lethe’ 강을 연결하여 순수한 진실 세계에 들어가고자 하는 강한 실천 의지를 유불선 세 사상에서 모색한 글이다. 그리스어 아레테이아(aletheia)는 ‘진실성’, ‘약속을 잊어서는 안 되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뜻이지만 저자는 세월호를 인식하였는지 지옥과 극락의 경계로 아레테이아(Aletheia)를 해석한 듯하다. 이 책은 처음 도입 단계는 유불선을 넘나들면서 아리송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계속 읽다보면 현장의 실천가로서 지난 세월을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너무나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진실의 세계는 반드시 곧 다가온다는 매우 희망찬 실천 의지를 제시하고 있다. (중략)
이 책에서 필자가 모색한 저승의 강이며 망각의 물 ‘lethe’ 강을 건너기 위한 사상적 실천적 방안은 강희맹이 그의 형 강희안의 책 서문에서 국가의 정치나 한 집안의 살림이나 자식을 가르치는 일의 기본 원리는 모두 꽃을 기르는 일에서 찾은 것과 매우 유사한 사상적 고민이다. 성인의 교화가 잘 이루어지면 천지의 온화한 기운이 꽃을 피우듯이 만물이 모두 제자리에서 영화롭게 된다고 보았다. 학자들의 학문 세계도 꽃과 같이 제대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성인이 마련한 글을 극진히 배워서 훌륭한 임금을 만나 자기의 포부를 실현하게 된다면 곧 그 이익과 혜택이 그 시대에 입혀지며, 인자한 은혜가 물건에까지 미치어 온 천하와 국가가 모두 꽃과 같이 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선비의 불행을 꽃처럼 피어나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데 비유하고 있다. 선비가 불행한 시대와 운명을 맞이하여 도(道)를 마음에 간직하고도 펴지 못하며, 교화가 집안에만 국한되고 널리 실시되지 못하는 것이 선비로서의 불행이라고 보면서 그 서문을 마치고 있다. - 전성호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