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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인연을 낳고 인연은 기적을 낳네
하양인 202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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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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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내 마음의 오솔길 1
당신이 나를 부르셨던 그날

“어머니를 꼭 살려주세요!”
엄마의 사랑, 언니의 사랑
최초 공부방은 아버지 무르팍
내 눈에 들어온 새로운 세상
부산행 밤 열차를 탄 사연
당장 안 되면 안 되는 일
드디어 허락된 입회 소식
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
서원에 대한 맹세
갑자기 사라진 첫 소임지

내 마음의 오솔길 2
날마다 숨을 쉬지만

첫 소임지 강릉본당
결핵요양소에서의 교리 수업
급성간염에 걸린 순한 양
정동진 벌인 교리 교실
성당의 삼종이 부른 대소동
사제관 식복사 데레사
수녀가 부른 명곡‘살베 레지나’
강릉본당을 떠나던 날
요양과 휴식의 시간
두 번째 소임지 종로성당
이혼을 막아낸 결연한 판단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닌 이유
처음 밝히는 나의 고통
여섯 손가락 소녀
호스피스 병동에서 나를 부른 두 사람
청빈한 아버지에 그 아들
세운상가 아파트에서 사는 신자들
사라진 내 손가방
요셉피나의 일생
성당이 살림 나던 무렵
갈등을 겪은 종신서원
청빈한 삶이냐 가난한 삶이냐

내 마음의 오솔길 3
다시 세상 속으로 향한 나의 발길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잔별 무리들
가난한 자, 가엾은 자
성당 건축을 앞당긴 신부님
하느님의 사자로 오신 사람들
나의 유일한 전신 사진
제병을 사러 온 목사
가짜 목사의 아내
진실을 잃어버린 사람들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
험난한 가정방문의 길
가수 고복수 선생의 문패
낮은 곳을 택한 두 할머니
배밭 속 움막
바뇌의 성모상이 상계동성당으로
움막에서 살던 수산나 자매
인정 많고 착한 영민이
수녀님들의 희생과 봉사
가난한 자로부터 받은 연탄 30장
스테파노는 최고야!
나를 괴롭힌 중매쟁이들
수녀님들의 무료 진료
혼배미사와 장례미사가 가장 많은 본당
하늘에서 눈물바다를 이룬 이야기
행복했던 해외여행길
눈물콧물이 국그릇에 빠진 날
비명횡사한 예비신자 세실리아
15년 만에 찾아온 휴식
상대원성당에서 다시 1년

내 마음의 오솔길 4
하느님이 마련하신 길을 따라

대부도 선감공소로 이동
일하시라고 모셨어요
난감할 때마다 나타나는 해결사
늘그막에 얻은 행복
공소에서 치른 첫 영세식
원헥톨 신부님의 대한 기억
35년 만의 첫 서울 구경
이것이 기적인가?
천만 원을 가슴에 품고
공소도 무너지고 내 마음도 무너지고
30년 만의 해후
평생 잊지 못할 은인
선감공소에 성모상을 모신 사람들
루시아 할머니와 종탑
찾아가는 예비자 교리 교육
시몬을 끌어안고 울던 날
숙자의 초청장
신부님의 수단을 만들던 시절
한글학교를 개설하고
갈래머리에서 반백이 될 때까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선물
선감에서 만난 뜻밖의 인연
폐암 판정을 받고서
홀로 지내는 시한부 인생
졸지에 사라진 내 몸속 병마들
사람들에게 들려 준 나의 치유 체험담
민들레국수집과의 인연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저자 소개 1

서창의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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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다. 1957년 9월 22일 세레명 ‘안나’로 영세 받다. 1959년 6월 29일 정결·순명·청빈 서원 맹세하다. 1962년 10월 17일 첫 소임지 강릉 본당으로 가다. 1968년 12월 두 번째 소임지 종로 본당으로 옮기다. 1973년 건강 악화로 수녀복을 벗다. 1974년 12월 20일 보따리 하나 들고 상계동 빈민촌으로 들어가 그곳 성당의 전교회장을 맡아 그들과 함께 15년 동안 울고 웃으며 지내다. 1991년 3월 17일 상계동 빈민촌보다 더 오지인 대부도 선감공소로 들어가다. 그곳 공소회장을 거치며 갯벌이 턱
1936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다.
1957년 9월 22일 세레명 ‘안나’로 영세 받다.
1959년 6월 29일 정결·순명·청빈 서원 맹세하다.
1962년 10월 17일 첫 소임지 강릉 본당으로 가다.
1968년 12월 두 번째 소임지 종로 본당으로 옮기다.
1973년 건강 악화로 수녀복을 벗다.
1974년 12월 20일 보따리 하나 들고 상계동 빈민촌으로 들어가 그곳 성당의 전교회장을 맡아 그들과 함께 15년 동안 울고 웃으며 지내다.
1991년 3월 17일 상계동 빈민촌보다 더 오지인 대부도 선감공소로 들어가다.
그곳 공소회장을 거치며 갯벌이 턱밑에 찬 가난한 바닷가 이웃들과 한 몸이 되어 새로운 공소 성전을 짓다.
2007년 6월 3일 폐암 진단 후, 6개월 시한부 인생 선고 받다.
2009년 선감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다. 남양성모성지 미사 중 “아멘”이 터졌고,
몸속에 있던 암 덩어리가 일시에 빠져나가는 기적을 체험하다.
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께 이 사실을 알리고, 서 안나는 체험을 여러 차례 간증했다. 남양성모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들을 현양하는 성지다.
2021년 5월 현재 서 안나는 대부도 선감공소에서 살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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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68g | 152*224*30mm
ISBN13
9791187077299

출판사 리뷰

너무나도 중요한 따뜻한 사랑

나는 1936년 12월 9일(음력)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열 살 때까지 유소녀기를 보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우리 가족은 경기도 양평의 비레마을로 이주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시골살이를 익혔다. 양평은 유난히 물이 맑았고, 우거진 숲이 많았다. 그 숲에는 여러 가지 야생화와 산채나물이 지천으로 자랐다.

봄이 오면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결에 영근 보리이삭들이 춤을 추었다. 누렇게 익은 보리밭은 물여울처럼 바람에 일렁거렸다. 잘 익은 보리 대궁 사이로 봄바람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소금쟁이, 물방개, 우렁이들이 못가에서 함께 코러스를 한다. 황금빛 보리밭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쏠리며 넘어졌다 이내 일어났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서울에 두고 온 단짝친구 윤이와 현석이를 떠올렸다. 그 소꿉친구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넘쳐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흔히 6·25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 중인 1951년 1월 4일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정부는 수도 서울에서 철수하였고, 역사는 이를 ‘1.4 후퇴’로 기록하였다. 이 1.4 후퇴 때 우리 가족은 퇴각하는 국군을 따라 피난길에 올랐다. 부모님의 고향인 충청북도 청주에서 피난의 발길을 멈췄고, 그곳에서 우리 가족의 피난살이는 시작되었다. 나의 10대 중반을 보낸 양평 비레마을 생각이 고된 피난살이 틈틈이 떠올라 몹시 그리웠다.

우리 집 앞에는 ‘바가지우물’이 있었다. 두레박을 내리지 않고, 그냥 바가지로 샘물을 뜰 수 있는 우물을 가리켜 바가지우물이라고 불렀다. 그 우물가에 앉아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 웃기도 하고, 때로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도 하였다. 삼베적삼 앞섶이 말려 올라간 밑으로는 늘어진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기엄마도 있었다. 비레마을에서 지내던 재미나고 신기하던 일들을 떠올리는 사이에 피난살이 기간도 길어졌다.

1957년 나는 청주에서 나길모(1926~2020) 주교님이 본당신부일 때 영세를 받았다. 교리를 공부하면서 머릿속에 깊게 새긴 것은 “너희는 가서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 유훈을 실천할 수 있을까? 나는 많이 고민하였다. 우선 내 부모형제부터 전교(傳敎)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내 부모 형제를 먼저 구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1959년 3월 26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정식 수녀의 길을 택한 것이다. 다른 수련자들은 12월에 입회하였는데, 나는 4개월 늦은 이듬해 3월에 혼자 입회하였다.

결국 하느님은 나의 기원을 들어주셨다.

의식주가 모두 제공되는 가운데 수녀에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수도원 생활이 내게는 호강스럽게만 여겨졌다. 고민은 쌓이고 깊어졌다. 그럴수록 내 마음속 평화는 점차 쪼그라들었고, 내 몸에도 병이 생겼다. 그 상태는 악화일로였다.

마침내 나는 1973년 수도복을 벗고 세상 속으로 나왔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듯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광야로 나온 셈이다. 15년 동안 서울 상계동 판자촌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공부를 깊게 했다거나 명문대학 간판이라도 있었다면 이를 발판으로 삼아 다른 일을 도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처지에서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달할 수 있는 그 일이 가장 적합한 방법이었다.

수도복을 벗고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저 나는 내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며 살아왔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이 일만 성공하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소망마저 없었다. 지난 생활을 되돌아보니 쉽게 이루어진 일은 없다. 그러나 평생을 두고 소원하였던 것들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이제 사람들 앞에 꺼내 놓으려 한다. 보잘것없는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

서창의 안나
85세 서창의 안나의 인생 이야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뜻을 안고 태어났다.
서 안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만 골라 그곳에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갈래머리에서 반백이 될 때까지 낮은 곳에서 생활하며
사랑의 꽃을 피우고, 사랑의 향기를 퍼트렸다.
이 책은 인간적인 진실을 단순하게 덤덤하게 써 내려간 인생 이야기다.

세 가지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

수녀가 된 서 안나는 14년 동안 ‘수녀님’으로 불린다.
수녀복을 벗고 빈민촌으로 뛰어든 때에는 ‘전교회장’으로 불린다.
선감공소에 한글학교를 개설하고는 ‘선생님’으로 불린다.
지금은 만난 인연에 따라 수녀·회장·선생으로 달리 불린다.
아주 작고 평범한 인연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추천평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가난하게 사는 것!

여기서 내가 말하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란 선택한 가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가난은 무작정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가난을 말합니다.
평생 불필요한 것을 지우고 사는 빈민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며 살아오신 서 안나 회장님을 내가 처음 뵌 곳은 서해안 대부도 선감 공소에서였습니다.
나는 서 안나 회장님을 만나 본 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토록 소문 없이 사랑을 퍼주며 사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2011년 10월 초하루, 그와 초대면한 자리에서 확인하게 된 서 안나 회장님의 과거를 요약해 봅니다.
안나 회장님은 1959년에 수녀원에 들어가셨고, 연약한 체질에 달려든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1973 년에 수녀원을 탈회하게 되셨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도생활 중에 더욱 굳힌 가난한 사람들 틈에서 부대끼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한시도 놓지 않았습니다. 휴식도 잠시, 당시 서울에서 대표적인 빈민촌으로 알려진 상계동으로 들어가십니다. 그곳 상계동성당 전교회장으로 가난한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전하고, 빈민들과 어울려 함께 슬퍼하고 함께 웃는 생활을 15년 동안 계속하십니다.
1991 년 상계동보다 더 낮은 선감 공소가 있는 마을로 들어가십니다. 그때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 마을이었습니다. 참 조용하고 때 묻지 않은 평화로운 어촌이고 농촌이었습니다. 이 소외되고 낙후된 선감마을 주민들을 위해 선감 공소 회장이 되어 희생 ?봉사하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2007 년에는 마침내 몸져누웠고, 폐암 진단을 받고, 6개월 시한부 인생 선고도 받았습니다. 안나 회장님은 기도로써 하느님과 소통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조용하게, 그리고 가난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도 하느님의 은총이라 싶었답니다. 그 무렵 아픈 몸을 이끌고 남양성모성지에 가서 기도하고, 미사참례도 했답니다.
마을 주민들도 지극 정성으로 아픈 당신을 도와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은총을 체험하셨다고 합니다. 그 지긋지긋한 아픔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후, 언제 그렇게 고통을 헤매던 환자였나 싶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답니다. 그런 어느 한날, 서 안나 회장께서 내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만나자고 했습니다. 만나자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의외였습니다. 그동안 고통 속에서도 병원을 가지 않고 참아냄으로써 발생한 의료비를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였습니다.
일금 1백만 원을 하얀 봉투에 담아 나에게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 기부하신 겁니다. 그날 그 돈 말고도 당신께서 땀 흘려 키우신 총각무며, 고구마며, 커다란 호박 한 덩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서 안나 회장님은 내게는 정말 멋진 믿음의 선배십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남에게 베푸는 것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임을 당신 스스로 모범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정말 좋은 분을 만나서 행복합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서 안나 회장님,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진정한 봉사와 나눔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 서영남 (민들레국수집 대표)
서 안나의 ‘내 마음의 오솔길’을 걸으며
내가 깨달은 것은 미소와 사랑이다.
그는 평생 낮은 곳에서 슬프고 아픈 인생들에게
미소를 주고, 사랑을 주며 살아온 사람!
그래서 누군가에게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보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담겼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허리를 굽혀 섬기는 자는 결코 위를 쳐다보지 않으며,
오로지 사랑으로써 작은 일을 실천할 뿐이라고 하지 않던가. - 임만택 제노 (라파엘 피아뜨 나눔재단 회장. 한국가톨릭레드리본 대표이사)
진실하고 단순한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다
이 책이 지니고 있는 힘은 사랑이다.
자칫 진부하기 쉬운 이 위대한 단어의 진수가 담겨 있어 기도하며 읽었다. - 원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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