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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일러두기 순회 영화 상영 구술 증언 해제 1부 순업과 흥행 그리고 영화 상영의 전국화 1. 전국을 유랑한 ‘건달 사업’ 흥행사, 진도군 박종민 2. 애국 충정에서 시작한 영화 상영, 해남군 서대호 3. ‘주먹’을 믿고 시골 마을을 순회한 로뗀바리, 고창군 박형훈 4. 전라북도에서 흥행한 로뗀바리, 전주시 장한필 5. 경남의 비도시 순회 상영의 대물림, 경남 고성군 김영준 2부 이동영사, 계몽 그리고 국민의 탄생 1. 지역 발전과 향토 계몽을 향한 마음, 고창군 문화원장 이기화 2. 해안 도시 경찰 공무원의 영화와 맺은 인연, 여수시 서양수 3. 비도시 영화 상영과 공보 담당 공무원의 삶, 강원도 명주군 박영동 4. 마산의 문화 사업, 마산문화원 부설 영화자료관장 이승기 5. 4?19 세대의 문화 운동과 영화 상영, 대전시 대전문화원장 황충민 6. ‘접촉지역’ 공보 전달과 영화 상영, 경기도 파주군 공보 담당 정형진 7. 미공보원 영화를 통해 깨달은 세계의 변화, 목포시 김정섭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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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에서 굿쟁이, 로뗀바리, 이동영사로
1903년 동대문 한성전기회사 기계 창고에서 ‘활동사진’을 상영하면서 영화의 존재가 대중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즉, 영화 상영 역사는 건물 형태의 극장이 아니라 극장 밖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게다가 영화는 특정 도시를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관객을 만났다. 일제강점기 흥행작 〈아리랑〉(나운규, 1926)이 경성을 벗어나서 전국에서 상영된 것은 흥행사 임수호의 지방순회대 덕분이었다. 순회 영화 상영은 순업(巡業), 로뗀바리(露天張り) 그리고 이동영사로 불렸으며 가설극장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었다. 세 용어를 구분한다면 순업과 로뗀바리는 일제강점기부터 흥행 현장에서 사용된 것이고, 이동영사는 국민을 계도하기 위하여 국가 권력이 수행한 영화 상영을 말한다. 가설극장으로 불린 순회 영화 상영의 전성기는 한국전쟁 이후였다. 1950년대 중후반 도시를 중심으로 대규모 상설극장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순업은 도시와 비도시를 막론하고 이뤄졌다. 순업에 나선 사람들은 흥행업에 종사한 사람도 있었지만, 계몽 운동을 앞세운 청년단체와 생계를 위해 모여든 퇴역 군경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 전국의 군읍(郡邑) 단위 마을까지 상설극장이 들어선 이후에도 순업은 여전히 인기를 누렸다. 대중교통의 미발달과 자연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비도시 지역 노동의 특성상 극장에 갈 수 없었던 다수의 관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찾아오는’ 순회 영화는 반가운 존재였다. 순회 영화 구술 채록을 통한 향토사과 극장사, 그리고 지역의 대중문화사 정리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하였는데, 1부 ‘순업과 흥행 그리고 영화 상영의 전국화’는 흥행을 목적으로 전국을 유랑한 다섯 명의 생애를 증언한 것이다. 2부 ‘이동영사, 계몽 그리고 국민의 탄생’은 지역 행정 기관 또는 문화원에서 공보 또는 문화 향유를 앞세우며 영화를 상영한 여섯 명의 구술자와 이들 기관에서 영화를 관람한 한 명의 향토사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의 영화 상영이 제도화된 공간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채록집은 복수(複數)의 극장사 서술을 포함한 지역의 대중문화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