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천시가 갈림을 슬퍼하시다
검은 공궐 북쪽에서 온 것이 데리고 온 것들 백귀야행(百鬼夜行) 쑥대머리 퇴귀사 수상한 사관의 진술 귀신보다 무서운 것이 명나라 사신 귀신글자 운명의 저주 악귀의 편지 악귀가 악귀를 몰아내는 세상 도깨비의 역사 주인을 스스로 찾는 검 가자 경복궁으로 작가의 말 참고문헌 |
|
조선의 법궁 경복궁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것과는 달리 음침한 느낌이 들었다. 궁궐을 짓고 나서 삼 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궁을 다시 색칠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단청을 칠하고 궁을 고치고도 얼마 되지 않아 이방원은 멀쩡한 경복궁을 두고, 도망치듯 창덕궁을 지어서 이어 했다. 왕세자로 책봉된 양녕대군과 왕비도 함께 했다. 그렇게 한 이유에 대해서는 모두 최면에 걸린 듯 뚜렷한 근거를 대는 사람이 없었거니와, 궁금하다 해서 묻는 이도 없었다. 조선의 법궁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렇게 빈 궁궐이 되었고, 한양 사람들은 경복궁을 검은 공궐(空闕)이라 불렀다. --- p.25 다음 날, 경안공주와 충녕은 그 책이 있다는 산으로 향했다. 경복궁의 서쪽에는 서산이 있었다. 충녕은 경안공주가 왜 자신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산을 중간쯤 오르자 산 아래로 경복궁의 모습이 보였다. ‘저토록 장엄한 궁궐을 왕께서는 왜 떠나 창덕궁으로 이어 하신 걸까?’ 충녕은 궁을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 태종은 왕이 되어 경복궁에 입성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창덕궁을 지어 그곳으로 옮겼다. --- p.33 누런 봄이었다.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았지만, 희망만큼은 싹트지 않는 누렇게 뜬 봄이다. 한양의 시전에는 팔 물건이 없었다. 가뭄과 흉년이 재앙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기 시작했다. 굶주린 백성이 풀뿌리까지 벗겨 먹는 통에 물건으로 거래될 만한 것들이 드물었다. 봄이면 가을에 갚기로 하고 외상으로 먹는 볏 술이나 볏 쌀이 슬슬 거래됐지만, 그런 것도 씨가 말랐다. 백성들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환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볍게 살았다. 도리도, 온정도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 앞에서는 이슬같이 사라졌다. 가난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할 것이 두려워 더 지독해지는 시절이었다. --- p.49 그들은 개성 시가지 우물에서 붉은 물이 나왔다는 얘기뿐만 아니라 서부 상대동에 있는 우물이 우레처럼 일었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놀라서 사방으로 도망갔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얘기했다. 고향 터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자기 살던 곳을 떠나본 적 없는 사람들은 외지 소식을 이렇게 보부상을 통해서 밖에 들을 수 없었다. 이 얘기를 듣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모두 탄식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장터 여기저기서 장사치들이 ‘이런 현상이 어디에도 있었고, 어디에도 있었다’고 말하며 소문을 굴렸다. 핏물이 솟는 현상은 개성에서 시작됐는데, 지금은 한양 인근까지 내려왔다고 말하는 데까지 소문은 부풀려졌다. --- p.55 |
|
〈장미의 이름〉〈다빈치코드〉〈단테클럽〉〈영원한 제국〉의 공통점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한 팩션이라는 겁니다. 팩션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왜?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므로, 기록에 상상력을 더하지 않으면 승자들보다 더 뜨겁고 치열하게 살다간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조선 역사의 견고한 ‘매트릭스’에 도전하는 새로운 상상력의 역사 이제 기록 뒤에 숨겨진 뜨거운 심장소리를 들으러 갑니다. 1) 개국 초 4대 왕으로 즉위한 세종은 수성군주로서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제쳐두고 하필이면 왜 한글창제에 그토록 힘을 쏟았을까요? 2) 한글창제 후 세종은 왜 당시 유교사회에서 이단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 서적을 가장 먼저 간행했을까요? 3) 세종은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왜 술사를 대동하고 다녔을까요? 또 경복궁 뒤 서산의 이름을 인왕(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의 이름)으로 바꾸었을까요? 4) 세종은 왜 오십여 가지가 넘는 질병에 시달렸으며, 세종의 자손은 모두 불행한 죽음을 맞았을까요? 5)세종은 왜 그토록 육식에 집착했을까요? 6)경회루 연못에는 왜 청동으로 만든 용이 던져져 있을까요? 7)조선의 왕들은 왜 법궁인 경복궁을 두고 다른 궁궐에 살았을까요? 이 모든 역사적 의문점은 놀랍게도 세종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차마 기록할 수 없었던 이야기. 기록의 균열을 타고 상상력의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러자 우리가 알고 있던 근엄한 문치주의 군주 세종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세종, 장영실과 함께 악의 세력과 싸우는 환상의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셨나요? 1. 세종대왕과 장영실에 대한 기록의 빈 틈을 추리 형식으로 풀어낸 액션 판타지 장영실은 조선 최고의 과학자입니다. 그런 그가 역사에서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대호군 장영실이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만드는 것을 감독하였는데 튼튼하지 못하여 부러지고 허물어졌으므로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였다.” 「세종실록」 1442년 3월 16일 불경죄로 관직에서 파면된 뒤로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작가는 장영실에 대한 행적 뿐만 아니라, 세종에 관한 다양한 의문점을 하나로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시켰습니다. 이것은 허를 찌르는 반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얘기는 통쾌했습니다. 2. 우리나라 문화유산에서 찾은 악의 존재 출현 좀비도, 흡혈귀도 아닙니다. 『삼국유사』 기이편(奇異編)에 기록된 신비로운 존재, 그 존재의 출현과 배신. 우리 문화원형에서 찾아낸 새로운 악의 모습과 괴물들이 등장해 상상을 초월하는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어 냅니다. 3. 문치군주 세종의 놀라운 변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세종대왕, 문치군주라는 틀에 박힌 이미지에서 벗어나 악의 존재와 조선의 국운을 걸고 싸우는 세종대왕의 모습은 다른 어떤 액션 히어로의 모습보다 강렬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제야 진짜 세종대왕을 볼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