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PDF
eBook 캉디드 또는 낙관주의
익살스럽고 무자비하게, 철학과 종교를 풍자하다 PDF
볼테르권혁
돋을새김 2021.07.05.
가격
6,000
5,400 6,000 쿠폰혜택가
YES포인트?
3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PDF 안내

이 상품은 구매 후 지원 기기에서 예스24 eBook앱 설치 후 바로 이용 가능한 상품입니다.

예스24만의 독보적인 PDF 필기 기능을 경험해 보세요!

이 분야의 이벤트

소개

목차

제1장 캉디드는 어떻게 멋진 성에서 자랐으며 어떻게 쫓겨나게 되었나 · 21
제2장 캉디드가 불가리아 군대에서 겪었던 일 · 28
제3장 캉디드는 불가리아 군대를 어떻게 탈출했으며 그 후에는 어떤 일을 겪었을까 · 33
제4장 캉디드는 어떻게 팡글로스 선생을 찾았으며 그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38
제5장 폭풍우, 난파, 지진, 팡글로스와 캉디드 그리고 재세례파 교인 자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44
제6장 포르투갈 사람들은 더 이상의 지진을 막기 위해 어떻게 훌륭한 화형식을 거행했으며, 캉디드는 어떻게 공개적으로 매질을 당했나 · 50
제7장 노파는 어떻게 캉디드를 돌보았으며, 그는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는가 · 53
제8장 퀴네공드의 사연 · 59
제9장 퀴네공드와 캉디드와 종교재판소장과 유대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65
제10장 캉디드와 퀴네공드와 노파는 어떤 곤경을 겪으며 카디스에 도착하게 되었고 어떻게 배를 타게 되었나 ·7 0
제11장 노파의 사연 · 75
제12장 이어지는 노파의 모험담 · 82
제13장 캉디드는 어떻게 사랑하는 퀴네공드 그리고 노파와 헤어지게 되었나 · 89
제14장 캉디드와 카캄보는 파라과이의 예수회 신부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나 · 94
제15장 캉디드는 어떻게 사랑하는 퀴네콩드의 오빠를 죽이게 되었나 · 101
제16장 두 명의 여행자가 여자 두 명, 원숭이 두 마리 그리고 오레용이라는 야만족과 함께한 모험 · 105
제17장 캉디드와 하인이 엘도라도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보았던 것 · 113
제18장 그들이 엘도라도에서 보았던 것 · 120
제19장 수리남에서 어떤 일이 있었으며 캉디드는 어떻게 마르틴을 만났나 · 130
제20장 바다 위에서 캉디드와 마르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나 · 140
제21장 캉디드와 마르틴이 프랑스 해안에서 논쟁을 계속하다 · 145
제22장 프랑스에서 캉디드와 마르틴에게 일어난 일 · 149
제23장 영국 해안에 도착한 캉디드와 마르틴이 보았던 것들 · 170
제24장 파케트와 지로플레 수사 · 173
제25장 베네치아의 귀족 포코쿠란테를 방문한 캉디드와 마르틴 · 181
제26장 캉디드와 마르틴이 저녁 식사에서 만난 여섯 명의 외국인 · 191
제27장 캉디드의 콘스탄티노플 여행 · 197
제28장 캉디드와 퀴네공드와 팡글로스와 마르틴에게 일어난 일 · 205
제29장 캉디드는 어떻게 퀴네콩드와 노파를 다시 찾았나 · 210
제30장 결말 · 214

부록 1. 볼테르의 생애와 《캉디드》·224
부록 2. 볼테르의 사상과 저서·232
부록 3. 계몽주의 사상가들 ·237
* 볼테르 연보 · 237

저자 소개 2

Voltaire,본명 :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
18세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 역사가인 다재다능한 작가 볼테르(필명)는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ois Marie Arouet)’라는 이름으로 1694년 11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는데, 이 학교에서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한다. 한편,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그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간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Sceaux)성(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청년 시대에 섭정 오를레랑 공을 풍자한 시의 작자로 간주되어 바스띠유에 갇혔다가 출옥한 뒤, 볼떼르란 필명으로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Oedipus)』(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1759), 『자디그(Zadig, ou la Destinee)』(1748), 『랭제뉘(L'Ingenu)』(1767)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Pantheon)에 안치된다.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그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종교 권력이었던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생전에는 대시인으로 대접받았지만, 그의 재능의 본질은 풍자 작가, 명쾌하고 기지에 찬 프랑스적 산문 작가의 전형에 있으며, 특히 철학적 에세이와 우화 소설에 뛰어났다. 이신론(理神論), 이성론의 입장에서 초자연을 강하게 부정하고 신랄하게 성서를 비판해, 후세에 그의 이름은 회의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계몽주의의 보급을 통해 대혁명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철학의 간』(1734), 『깡디드』(1759), 『관용론』(1763), 『철학사전』(1764) 등이 있다.

볼테르의 다른 상품

아주대 영문과 졸업. 출판기획과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군주론』 『유토피아』 『월플라워』 『우주에는 신이 없다』 『존 스타인벡의 진주』 『자유론』 『사회계약론』 『통치론』 『인문학으로 읽는 과학사 이야기』 『플랫랜드』 『수학자의 변명』 『과학이 우주를 만났을 때』 『뉴턴의 우주에서 아인슈타인의 우주로』 『상대성이론 ABC』 등이 있다.

권혁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05일
이용안내
  •  배송 없이 구매 후 바로 읽기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가능 ?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파일/용량
PDF(DRM) | 13.95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56쪽 ?
ISBN13
9788961673068

출판사 리뷰

이 세상이 슬프다는 것을 배우면서
마음껏 웃게 하는 풍자소설


볼테르는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 사상가로 소설가, 시인, 극작가, 역사학자로도 명성을 떨쳤다. 23세 때 왕실을 풍자한 시를 써 투옥되었다. 출옥 후 비극 [오이디푸스]가 대성공을 거두며 왕실에서도 인정하는 작가가 되었지만 귀족에게 결투신청을 했다는 불경죄로 바스티유 감옥에 갇혔다가 영국으로 추방되었다. 영국에 머물면서 존 로크와 아이작 뉴턴의 자유사상과 과학정신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뉴턴의 ‘사과와 만유인력’ 일화는 그가 뉴턴의 조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자신의 서간문에 밝히면서 널리 알려진 것이라고 한다.

볼테르는 관용과 이성에 바탕을 둔 근대적 사고방식을 추구하면서 전제정치와 로마 가톨릭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평생 권위에 맞서고 종교를 강하게 비판했던 그의 책이 불태워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의 글 대부분이 프랑스 왕실과 가톨릭교회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곳곳에 은신처를 마련하여 ‘언제라도 도망칠 태세를 갖추고 있었어야만 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는 볼테르 사후 백주년 기념식사에서 ‘볼테르라는 이름은 18세기 전체를 특징짓는다.’ 라고 했다. 아나톨 프랑스는 ‘볼테르의 손끝에서 펜은 달리며 웃는다’고 했으며, 앙드레 지드는 세계문학의 최고 걸작 열 권을 꼽는다면 성서, 셰익스피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그리고 볼테르의 [캉디드]를 고르겠다고 했다.

해외로 떠돌던 그는 1778년 2월에 25년만에 파리에 돌아왔지만 그해 5월에 사망했다. 교회는 그의 기독교식 장례를 거부했지만 친구들이 비밀리에 샹파뉴 수도원 묘지에 심장과 뇌를 방부 처리하여 안장했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이후인 1791년에 프랑스 의회는 그의 철학이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근간이 되었다고 인정하면서 프랑스에 크게 기여한 위인들이 묻히는 ‘파리의 팡테옹’에 안치시켰다.

볼테르만이 쓸 수 있는, 경쾌하고 무자비한 풍자

《캉디드 또는 낙관주의》는 1759년에 출간되었다. 평생을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스위스를 전전하던 그가 스위스 국경 부근의 페르네에 정착했을 때였다. 당대의 유럽을 풍미하던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집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리스본 대지진(1755년)과 ‘18세기의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7년 전쟁(1756~1763)과 같은 참혹한 사건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3만 여명이 지진으로 사망한 자연재해에 대해 가톨릭 성직자들이 ‘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 재앙’이라고 말하는 것에 분노했던 것이다.
1759년 출간 이후 1768년까지는 본명을 밝히지 않고 독일의 랄프 박사라는 필명으로 발행되었다. 발표되자마자 ‘종교와 도덕에 반하는’ 작품이라는 이유로 정부와 교회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이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발표되던 그해에 20여 가지 판본으로 3만부가 판매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회놈을 잡아먹자’(109쪽)는 구절은 유행어가 되었다.

“볼테르 외에는 《캉디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프랑스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진난만하고, 자연스럽게 전개되며, 가볍게 넘나들며, 장난스럽게 비꼬는 산문은 그만이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군데군데 약간은 외설스럽고, 약간은 음란하며, 모든 곳에서 장난기가 넘치고, 신랄하며, 치명적으로 불경스러운 언행이 있다. 만약 문체가 그 사람을 나타낸다면 이것은 볼테르일 수밖에 없다.”
―윌 듀런트 [문명 이야기] 제9권 ‘볼테르의 시대’ 중에서

당시 유럽에서는 ‘신이 창조한 현재의 세계가 최선의 세계’라는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를 둘러싼 철학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볼테르는 이 작품을 통해 종교와 전제정치의 온갖 부조리와 자연재해, 전쟁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 어떻게 ‘최선일 수 있느냐’며 ‘낙관주의’를 장밋빛 환상으로 조롱한다. “개인적인 불행은 공공의 이익이 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불행이 많을수록 보편적인 이익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겁니다.”(43쪽)라는 허무맹랑한 ‘낙관주의 철학’을 통쾌하게 조롱하여 유럽 시민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었던 것이다.

[캉디드]가 발표된 이후 1803년까지 최소한 10편의 속편들이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발표될 정도로 당대의 서구사회에 깊고 큰 영향을 끼쳤다. 1955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가로 참여한 오페레타가 무대에 올려졌으며, 1987, 1999, 2010년에는 새로운 곡과 대사로 개작되어 상연되었다. 1956년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상연되었으며 지금도 [캉디드]를 원전으로 한 영화, 연극, 음악, 코메디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