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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章. 연서(戀書)
12章. 장작은 쌓여 가고 13章.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 14章. 세상을 손에 쥐고도 15章. 마땅히 내 것이 아니라면 16章. 누가 꽃을 꺾었는가 17章. 각자의 고독 18章. 구중궁궐 19章. 달빛 아래 메밀꽃, 눈처럼 하얗건만 20章. 다정이 돌아설 때 더 무정하듯이 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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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확인하러 왔다.”
또렷한 음성이 수선에게 일직선으로 쏟아졌다. 수선은 숨을 죽이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태언을 바라보았다. 짙게 내려앉은 눈빛이 기다렸다는 듯 수선과 눈을 마주했다. “돌아가겠다는 마음은, 여전한 게냐.” 선택의 순간이 불쑥 수선에게 다가왔다. 벌써 두 번을 말하였고, 서신까지 써 보내었으나 그럼에도 태언은 또다시, 되묻고 있었다. 마치 없던 일처럼, 수선에게 기회를 주듯이. 정말 돌아가겠느냐고. 탁자 아래로 꼭 맞잡은 손이 수선의 마음을 대신해 엎치락뒤치락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희고 고운 손등에 선명히 새겨진 붉은 자국이 망설이는 수선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낮고 엄중한 목소리였으나 어찌 그 안에 숨은 다정을 엿보지 않을 수 있을까. 이미 몇 번이고 선택한 일에 대해 다시 선택하라며 기회를 내미는 태언을 수선은 똑바로 응시했다. 상서로운 동물이자 황제의 상징인 기린(麒麟)이 어둠을 닮은 검은 천 위로 존재를 과시하듯 금색 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하늘의 자손이자 세상의 주인으로서 그저 명령만 해도 충분했을 일이었다. 고작 해 봐야 볼모가 이 땅을 떠나는 것이 무엇이라고. 무표정한 얼굴로 다정한 속내를 숨기며 태언은 지금 이 순간도 수선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황제의 관을 쓰고서도 여전히. 차라리 단호하게 명령이니 따르라 하시었으면 그리할 것을. 허나 망설여서는 안 되었다. 어째서 자신이 태언의 곁을 떠나야 하는지는 너무도 명확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선은 대답하기를 주저하며 입술을 감쳐물었다. 태언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인내하며 수선을 바라볼 뿐이었다. 제게로 향한 저 타는 듯한 눈동자 속에는 그녀가 읽어 낼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뒤엉켜 있었다. 수선은 검게 회오리치는 태언의 눈동자를 보며 마침내 결심했다. 하지만 바짝 마른 입술이 단단히 맞붙어 쉬이 입술이 떼어지지 않아 그녀는 말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제 의사를 명확히 밝히기에는. “내가 가지 말라 해도?” “……제가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 황제 폐하께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태언.” 말을 자르듯 태언은 두 글자를 내뱉었다. 그의 이름을 명명하는 목소리는 단호했다. “황제 폐하가 아니라 태언이다.” “안 될 말입니다. 어찌 제가 황제 폐하의 이름을…….” “선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제 이름을 부르는 그 음성이 이곳에 두고 가려던 좋은 기억들을 순식간에 환기시켰다. 죽음의 아이의 이름이 무어 좋다고, 그렇게 애틋하게 불러 주십니까. 그 이름이 불릴 때마다 여기에 남고 싶다 애원하고 싶어졌다. 죽음의 아이라는 사실을 영영 감춰 두고 아무렇지 않게 그의 곁에 남고 싶었다. 하지만 무서웠다. 자신 때문에 그의 주변은 계속해서 피 냄새가 끊이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죽음이 만연하여 모두에게 살아 있는 공포가 되어 결국엔 그를 잡아먹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자신이 죽음의 아이라는 걸 태언이 알게 된다면? 그건 더 두려웠다. 다정했던 그의 눈빛이 싸늘히 식어 괴물을 보듯 변해 간다 생각하면 차라리 지금 헤어지는 것이 나았다. “저는 때가 되면 돌아가기로 되어 있는 볼모일 뿐입니다.” “그 때가 지금이 아니라면?” 이어지는 태언의 대답에 수선은 급기야 애원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어찌하여 이러십니까. “나라의 정세가 혼란하다 들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볼모이나 이안국에서는 공주이니 제가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분명 폐하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다 큰 아녀자가 이곳에 이유 없이 남아 있다면 시선이 곱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도 곧 혼인하실 것이고…….” 수선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굳게 맞잡은 두 손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바들바들 떨렸다. 머릿속으로 제 다리를 내리치며 웃던 류연화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누구와 말이냐.” “네?” “누구와 내가 혼인한단 말이더냐.” “……예부상서의.” “아, 그 여자?” 태언은 그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던 방 안의 초조한 기운들이 그의 허탈하기까지 한 웃음에 흐트러졌다. “이 작은 방에서 나가지도 못했을 텐데, 나라의 정세가 혼란해진 것은 어찌 잘도 들었으면서 그건 듣지 못한 모양이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수선의 물음에 방금 전까지 그의 얼굴에 자리 잡고 있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딱딱하게 굳다 못해 형형하기까지 한 눈빛으로 수선을 바라보던 태언이 입을 열었다. “귀신과 어찌 혼인을 하겠느냐.”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