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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 행성표류기
김희준 유고작
김희준
난다 202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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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구성 소개

책소개

목차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시인의 말

1부 단지 여름이 실존했네

생경한 얼굴 / 악수 / 아르케의 잠 / 인류도감 / 요르문간드의 띠 / 태몽집 / 새벽에 관한 몽상 / 캔자스의 산타 /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 하지만 그러므로 / 구름 포비아에 감염된 태양과 잠들지 않는 티볼리 공원, 그러나 하나 빼고 완벽한 목마 / 기호학자의 하루 / 사기(史記)꾼 / 종의 기원

2부 천진하게 떨어지는 아이는 무수한 천체가 되지

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 / 에덴의 호접몽 / 제페토의 숲 / 시집 / 백색소음 / 인디고 비행 / 소행성09A87E의 행방 / 습하다 / 알비노 인간 / 소년기의 끝 / 왼쪽으로 가는 므두셀라의 방주, 포도나무 둥지에 숨겨진 노아의 사육제 / 열대야 / 7월 28일 / 환상통을 앓는 행성과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

3부 지금 내가 그린 우리 가족처럼 말이야

친애하는 언니 / 상실의 피그말리온 / 연필 / 유년 스케치 / 방황하는 마틸다 / 7월 7일 / 왔다 갔다 / 8구역 / 드므개 마을 / 너의 네버랜드 / 탁아소의 쌍생하는 낮잠 / 우체통 / 로라반정 0.5mg / 테트리스 적응기 / 조커의 난타적 성향

4부 애인이 없어야 애인을 그리워할 수 있었다

평행 세계 / 아무나씨에게 인사 / 면접의 진화 / 기형적으로 순환하는 너와 나의 설원, 그리고 파라다이스 혹은 샴쌍둥이 / 싱싱한 죽음 / 페스티벌 / 일랑일랑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림을 구기는 오후 / 오후를 펼치는 태양의 책갈피 / 안녕, 낯선 사람 / 포말하우트의 여름 / 홀로그램 바나나 / 측별 가능한 마르살라 씨의 불면증 / 꿈꾸는 모비딕

발문|위태롭고 불안한 문장들의 호명
|장옥관(시인)


『행성표류기』
시작하는 말 ─ 005

목동자리……우주 미아가 될 당신을 위하여, ─ 011
처녀자리……코마의 평원에 머무는 나비 ─ 021
궁수자리……오만한 현자와 거룩한 반인반수의 땅 ─ 033
백조자리……은하를 건너는 밀서와 쏟아지는 알타이르의 새 ─ 045
뱀주인자리……재생되는 낮과 밤, 아스클레피오스의 백사 ─ 057
남쪽물고기자리……물병에 갇힌 포말하우트의 이름들 ─ 067
삼각형자리……바람개비 은하에 잘린 외로운 도형 ─ 079
안드로메다자리……중력으로부터 해방되는 안드로메다의 사육장 ─ 091
오리온자리……성운의 수태고지, 트리에 걸린 첫눈과 슬픔에 빠진 거인 ─ 103
쌍둥이자리……배태하는 백조의 아이들; 북하北河의 껍질 ─ 113
작은개자리……귀애하는 나의 반려 ─ 125
컵자리……칸타로스에 담긴 주신酒神의 환각 ─ 137
까마귀자리……자오선을 회전하는 오좌烏座의 낭설 ─ 149

끝나지 않은 말 ─ 161

저자 소개 1

1994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경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다녔다. 2017년 『시인동네』를 통해 등단했다. 2020년 7월 24일 불의의 사고로 영면했다. 그해 9월 10일 만 스물여섯 생일에 유고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이 나왔다. 다음해 1주기에 유고 산문 『행성표류기』를 펴냈다. 2022년 그의 이름을 딴 ‘김희준청소년문학상’이 제정됐다. 이 책은 그의 5주기 생일을 맞아 새 단장을 한 그의 유고 산문 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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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24g | 130*224*18mm

출판사 리뷰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사라지는 건 없어
밤으로 스며드는 것들이 짙어가기 때문일 뿐


문학동네시인선 146번째 시집을 펴낸다. 2017년 『시인동네』를 통해 등단한 김희준 시인의 시집이다.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 김희준 시인. 1994년 9월 10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으니 올해로 만 스물여섯의 시인. 2020년 7월 24일 불의의 사고로 영면했으니 만 스물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인. 그러하니 이것은 시인의 유고시집. 시인이 태어난 날이자 시인이 떠난 지 사십구일이 되는 날에 출간되어 시인 없이 어쩌다 우리끼리 돌려보게 된 시인의 첫 시집. 이럴 수가 있는가 하면 이럴 수밖에 없음으로 하염없이 쓰다듬게 되는 시집. 이런 김희준 시인의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제목 끝 쉼표 하나 어떻게든 붙잡고 보는데 시인의 말마따나 그 어떤 이유로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뼈아픈 어처구니의 심정 속에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시집, 그런 시집.

정말이지 무엇 때문이었을까. 말하고 있다지만 정확히 알 수 없음으로 자꾸만 찾아 읽게 되는 김희준 시인의 그 ‘때문,’. “형, 우리는 버려진 거였어 그림 형제의 일기를 훔쳐보던 형과 바늘로 찔러버리고 싶은 세상이라고 그날의 일기를 써내려가던 내가 그리고 정글짐 너머에서 나눈 혀가 녹슨 맛이 났던 건 그런 이유 때문,”(「백색소음」)이라거나 “그날 손을 놓친 건 지구로부터 몸을 버리러 온 밤이었기 때문,”(「환상통을 앓는 행성과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이라거나 “옷소매는 죽어버린 절기로 가득했고 빈틈으로 무엇을 키우는지 알 수 없었어 주머니에 넣은 꽃잎을 모른 체했던 건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친애하는 언니」)이라거나 “쏟아지는 일은 생각보다 흔해서 멍이 들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물구나무선 내가 태양으로부터 버려질 수 있었던 건 군네라가 숨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탁아소의 쌍생하는 낮잠」)이라하면서 도합 4편의 시에서 4번씩이나 반복하여 쓰고 있는 시인의 이 ‘때문,’. 밑줄 그어 연거푸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때문,’은 주어진 제 상황에 대한 탓이거나 떠넘김이라는 전가가 아니라 꼿꼿하고 반듯한 자세 속 현실을 직시하고 환상을 감내하는 주체적인 제 태도 속 표현임을 쉬이 짐작하게 한다.

총 4부로 나뉘어 담긴 시인의 시들을 보라. 총 57편의 시가 담긴 이번 시집 속 시인의 크게 뚝뚝 잘라 뱉은 부의 제목들부터 먼저 보라. “단지 여름이 실존했네”(「악수」)라고 했다. “천진하게 떨어지는 아이는 무수한 천체가 되지”(「환상통을 앓는 행성과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라고 했다. “지금 내가 그린 우리 가족처럼 말이야”(「연필」)라고 했다. “애인이 없어야 애인을 그리워할 수 있었다”(「아무나씨에게 인사」)라고 했다. 제 시집의 뱃머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듯 모를 듯 그러한 혼돈의 울렁임 속에 그러나 특유의 솔직함으로 더한 발랄함으로 그 어떠한 눈치를 보는 일에 타협이란 없이 툭툭 주절주절 우지끈우지끈 시심을 발동시키고 시어를 내뱉고 시라는 리듬에 춤을 춰가며 제 시들을 한껏 부려낸 김희준 시인. 부의 제목만으로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유추하고 추출해보자 하니 ‘죽음’이 튀어나오고 ‘유년’이 튀어나오고 ‘가족’이 튀어나오고 ‘여성’이 튀어나온다. 크고도 넓은 시의 주제, 깊고도 높은 시의 주제, 그리하여 처음이자 끝에 늘 마주하게 되는 시의 주제를 사방 줄로 묶고 이 줄 저 줄 고무줄놀이에 바빴던 시인. 욕심일 수 있겠으나 제 안의 폭발하는 에너지 또한 타고남이라 어찌할 바 몰랐을 세상과의 마주함이 벅찼을 시인.

김희준 시인은 몹시 뜨겁고 아주 찬 언어의 소유자다. 그 중간의 미지근한 온도를 맞출 줄 모르고 그 맞춤에 에이 하고 욕조에서 나올 만큼 제 몸의 언어를 믿고 제 몸의 언어를 사랑해온 이임을 특유의 그 시들로 충분히 짐작하게도 한다. 시인의 언어는 달려가고 시인의 언어는 넘어지고 시인의 언어는 구르고 시인의 언어는 뛰어들고 시인의 언어는 껴안고 시인의 언어는 밀어내고 시인의 언어는 얼어붙고 시인의 언어는 불탄다. 시로 목적이 있는가 하면 그 초점을 흐릿하게 한 채 가벼워짐을 가뿐해짐을 좇을 줄 아는 타고난 관록으로 어딘가 하면 삶의 무용의 꼬리를 찾고 잡아 휘휘 휘두를 줄 알았던 시인 김희준.

사라지는 건 없어
밤으로 스며드는 것들이 짙어가기 때문일 뿐


등단작 「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 속 이 두 구절에 오래 눈이 간다. 사라짐이 아닌 스밈으로의 짙음. 그러니 신화 속 천착과 동화적 상상력, 이 두 세계를 저글링하며 “어쨌거나 여름은 자기를 기다리는 일”(「7월 28일」)과 같은 구절을 툭 하고 내뱉을 수 있었겠지. “우리는 아침으로 알탕을 먹는다 입안에서 알이 터질 때마다 응앙응앙 소리가 들리는 건 비밀로 하자”(「생경한 얼굴」). 귓속말을 하듯 우리에게 이런 소리도 공유하게 했겠지. 시인이 이 시집으로 내미는 악수. 동명의 시 「악수」를 한번 읽어보시겠는가. “비의 근육을 잡느라 하루를 다 썼”다고 하더니 이리 귀결하는 이 시를. “물구나무를 서서 세상을 들어올리는 내가 있네 빗줄기를 잡느라 손은 손톱자국으로 환했네 물집이 터졌으나 손금에는 물도 집도 없었네 단지 여름이 실존했네”. 우리들의 이 ‘여름’이 사라지겠는가. 우리들의 이 ‘실존’이 없어지겠는가. 우리들이 없어도 이 여름은 영원히 있고 우리들이 없어도 이 실존은 잠자코 있다. 그걸 믿음으로 그걸 희망으로 우리는 있다 없어짐에 악착같음을 놓고 비루먹음을 버릴 수 있는 거겠지.

시인의 말을 읽고 또 읽는다. “올리브 동산에서 만나요”. 올리브 컬러를 머금은 시집을 만지고 또 만진다. 올리브 동산이 지금 여기 없다 해도 시인이 만나자 하니 언젠가 거기 있겠지. 만나요, 하는 말만큼 기대 속 설렘을 부추기는 예쁨과 따스함 속 시집을 덮자 하니 장옥관 시인이 시집 끝에 보탠 발문이 아파 쉽게 그러해지지가 않는다. 시인 김희준과 더불어 사람 김희준을 정확하고도 투명하게 관통해낸 이야기가 이 시집을 넘나드는 데 있어 긴요한 ‘곁’이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싶다. 장옥관 시인의 발문 끝처럼 이 글의 말미도 이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인터넷 잡지 『웹진 시인광장』에서 김희준 시인이 한 말이라 한다. 두루 새김이 명복을 비는 일이라 할 것이다.

“모든 시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가 아주 사랑한다고요. 늘 고민하던 말이었는데 마땅한 기회가 없어서 꺼내지 못했거든요. 선생님, 시가 너무 좋아요. 매일 절절 생각해요. 정말 아끼고 사랑해요.”

김희준 시인은 “소행성09A87E”로 돌아간 게 틀림없다. 아니다, 그는 아직 이 별에 머물고 있다. 이 시집이 나오는 9월 10일. 자신의 스물여섯번째 생일이자 사십구재가 드는 그날, 시집을 안고 자기 별에 돌아갈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 우리는 지구별의 언어와 감정으로 김희준 시인을 소환해선 안 된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면서 그를 떠올려야 한다. 자신의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메모처럼, “엄마 나는 좋아, 다 좋아” 하며 짓던 환한 웃음.
─장옥관 발문, 「위태롭고 불안한 문장들의 호명」 중에서

[시인의 말]

올리브 동산에서 만나요

2020년 9월 10일
김희준


〈행성표류기〉
우주 미아가 될 당신을 위하여,

2019년 4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월간 『시인동네』에 연재했던 「행성표류기」 열두 편에 미발표분 원고 한 편을 더해 책으로 엮었습니다. 시인 스스로 ‘행성표류 환상서사시집’이라 기획한 바 있으나 더러 산문이라 불렀으며, 은하를 배경으로 신화와 동화, 전설과 환상을 넘나드는 소설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모든 문장이 행이고 모든 단락이 연인 것은 꿈조차 시로 꾸었던 젊은 시인의 본령 덕분 아닌가 합니다. ‘시간과 공간은 물론 언어의 경계와 한계를 허무는 시도’(김명철)는 기어이 형식과 장르를 넘어, 별과 우주의 경계를 넘어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타인의 꿈에서 알을 낳는 오네이로이상제나비, 강아지와 고양이의 말캉한 ‘젤리’가 열리는 발바닥나무, 삼백 개가 넘는 목젖을 가진 구관조 북방검정부리새…… 시인이 여행한 행성들은 빛나는 상상력을 촘촘한 자모로 빚어낸 영험한 생명으로 가득합니다. 언젠가 ‘천계도감’이나 ‘천체식물백과’로 남기고자 기획했던 다채로운 종(種)의 기록들을 이 표류기에서나마 반갑게 만날 수 있습니다. 처음 듣는 외계의 이름들, 그러나 낯섦 대신 그리움으로 발음하게 되는 것은 시인의 이 반려들이 밤하늘 향해 발돋움하되 꿋꿋이 모성에 발 딛어 그려낸 꿈들인 까닭입니다. 동화가 실은 오역임을,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가져야 하는 인어가 아가미를 끔벅거리는 반인반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아버린 시인. 그는 우리에게 ‘진짜 외계’, 시의 눈으로 깨어 있어야 볼 수 있는 꿈의 세계를 선물합니다.

땅에 닿자마자 숨을 갖는 신비로운 언어들
발신자가 만들어내는 추상명사가 자라는 땅


만 스물여섯 여름 시인이 이 별을 떠나고 사십구일 되던 날, 그의 첫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 『행성표류기』에는 시집 곳곳에서 출발한 언어, 시집 밖에서 맞닿는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때때로 스펙트럼 행성에선 그리운 사람을 한평생 쓸 수 있는 이름이 내린다”(「환상통을 앓는 행성과 자발적으로 태어나는 다이달로스의 아이들」, 시집)와 “스펙트럼 종이가 적당한 빛으로 내린다. (……) 그리하여 당신에게 당도하지 못한 편지가 쏟아지고 있다”(54쪽), 두 문장을 포개어봅니다. 혹은 이런 이미지들. “녹슨 화덕에서 장작을 태웠소 아몬드나무가 저녁과 함께 타오르오 식탁에는 떨어진 열매와 꽃잎이 보이오 냄새를 풍기는 곳마다 거리의 아이들이 창틀에 매달렸소”(「캔자스의 산타」, 시집), 동화 『오즈의 마법사』 속 풍경은 “하루는 길죠. 아몬드나무의 장작을 태우면 모닥불에서 고소한 냄새가 났어요. 당신을 비추는 그림자가 아까워서 음영을 한참 바라봤어요”(50쪽)라는 문장을 타고 그리스신화 속 펠리온산으로 옮겨갑니다. 한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이 꼭 닮은 듯 다른 결로 이어지고 출렁이며 이윽고 이루어내는 쌍성(雙星). 그가 남긴 『행성표류기』는 젊은 시인의 시론이자 시작 메모이자 “생의 곡진함” ‘씀의 곡절함’ 가득한 창작 일기라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늘에서부터 거꾸로 침잠하는 막막한 나를,
나의 어떤 마음이 이끌고 있을까.


머리마다 표류 일자를 숫자로 남긴 꼭지들은 때때로 표류기의 형식이었다가, 편지의 말씨였다가, 일기처럼 내밀하고 시의 운율을 타기도 하며 끊어질 듯 끊이지 않습니다. 무한 기호(∞)를 단 어느 조각들에서는 그의 아름다운 모성, 지구에서의 여행기를 만나게도 됩니다. 생의 기억들을 펼쳐 보여준다는 산문 속 신비한 나비처럼,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의 모성, ‘안데르센의 나라’에 그가 새겨둔 기억들을 엿볼 수도 있겠습니다.

『행성표류기』에서 ‘블랙홀양피지’를 통해 행성에서 행성으로 여행하는 ‘나’는 장마다 하나의 별자리를 경유합니다. 4월부터 시작해 한 달에 한 별자리씩 그 무렵 가장 빛나는 성좌를 택했으니, 열세 행성을 지나는 동안 계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봄 끝에 이르는 셈입니다. 책에서는 목동자리, 궁수자리처럼 황도 12궁이라 불리는 익숙한 별자리뿐 아니라 삼각형자리, 컵자리 같은 생소한 별자리들을 지나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기록한 48개 별자리를 염두에 둔 것일 수도, 1930년 국제천문연맹이 정한 88개 별자리를 따랐을 수도 있겠으나, 시인은 별을 두고 쏟아지는 이야기이자 핏줄의 운명이라 하였으니, 별의 자리 또한 어디선가 끝없이 무수히 빛날 것입니다.

「시작하는 말」의 4월, 목동자리의 봄, 뱀주인자리의 여름을 지나 다시 까마귀자리의 늦봄까지. 시인이 사랑했던 벚꽃과 유채꽃의 계절에 출발한 이야기는 수많은 식물과 신화와 반려와 환상의 별들, 무수한 꽃의 자리를 지나 다시 여름 초입에 이릅니다. 천동설을 주장했던 프톨레마이오스는 태양계 행성의 움직임이 지구를 중심으로 한 궤도에 맞지 않자 복잡한 계산을 통해 기하학적인 궤도를 만들어냅니다. 이 책의 표지에 쓰인 꽃문양이 그 궤도의 일부를 본뜬 것이기도 하지요. 지구라는 모성, 이 땅에 발을 딛고서 넓고 무한한 우주를 품에 안으려 하는 시인의 꿈이 영영 시들지 않을 꽃을 피웁니다.

영혼이 순환하는 쉼터에서
오래지 않아 만나게 될 나의 반려, 안녕.


“여긴 여름이야, 거긴 어때?” 시인의 시비에 그의 시를 빌려 새긴 인사말입니다. 벚꽃의 분홍, 유채의 노랑, 산하엽의 하얀 투명함 두루 지나,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사라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쉼표의 올리브 동산 지나, 시인은 『행성표류기』의 끝에 맺음의 마침표를 둡니다. 생전 시인의 목소리를 옮겨와 「끝나지 않은 말」로 담았습니다. 하나의 별, 하나의 세계를 담은 맺음이자 그래서 닫히지 않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 여기에서 출발해 거기에서 끝나지 않을 이야기.

마무리는 분명히 있어, 엄마.
─ 「끝나지 않은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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