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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자신이 되어 간다
여는 글 | 시시하지 않은 시절의 시시풍덩한 이야기 팬데믹 시대, 학교의 본모습이 드러나다 호숫가 마을, 분교에서 보낸 한철 공교육을 두둔하다 공교육에 온전히 기대어 가려면 날마다 자라는 아이들 오늘 하루도 생기발랄 ‘학교 밥’ 한 끼가 주는 의미 식사는 하셨는지요? 아이는 밥심으로 다음 걸음을 내딛는다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향하여 시(詩)가 구르는 교실 헐렁한 교육과정을 꿈꾸며 아이들에게 ‘쉼’의 의미 마스크 너머, 거리두기 너머에서 아이들의 자유시간을 지켜 줄 의무 현장의 교사들에게 보내는 응원 차를 달이고 마주한 시간 교사의 선한 결은 아이들에게 번져 가고 불안은 때로 영혼을 잠식하지만 제 길을 갈 것, 누가 뭐라 하든지!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학교다움에 대하여 안녕, 분교에서 보낸 한철 자, 학교 가자! 덧붙이는 글 | ‘진짜’를 만나러 숲으로 가다 닫는 글 | 오늘은 희망에, 희망을 더해 온통 희망이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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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등교시간이다. 하지만 오늘도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 못했다. (…) 학령기가 되면 학교를 가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대문이 굳게 닫힌 것이다. 학교 가기 싫다던 아이들이 학교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하루 세 끼 아이들 밥을 걱정하거나 차리면서 그간 학교에 교육을 일임했던 학부모들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한 것이 공부만이 아님을, 밥도 그곳에서 먹었음을, 그 밖에 학교가 맡았던 기능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가 애증하던 학교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까, 그 물음은 필연이 되었다.
---「호숫가 마을, 분교에서 보낸 한철」중에서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했고, 또 한편으로는 강화했다. 똑같이 평등한 교육 사다리지만, 그것을 오르는 시합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잘 먹고 잘 자라 체력이 왕성하고 먼저 출발한 부유층 아이들에게 유리하다. 공정하다고 하는 시험의 민낯이다.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취약계층 아이들이 출발선에 공정하게 설 수 있도록 국가가 해결해 주는 것, 거기에 공교육이 있다. 이것을 말하게 한 것도 공교육의 힘이고, 이것을 주장하게 한 것도 공교육을 통해 배워 알게 된 것이다. ---「자, 학교 가자!」중에서 교육하는 동안 정작 우리는 ‘아이들 삶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학교는 다시 그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교육이 잘 짜이는 동안 그 짜임에 힘이 들어가서 처음 그것을 시작하게 된 것을 잊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행복하려고 삽니다. 교육은 그 삶을 돕는 것이지요. (…) 오늘은 희망에, 희망을 더해 온통 희망이기로! 교육이 또한 그 희망인 줄 압니다. ---「닫는 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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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학교의 본모습이 드러나다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개학으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교실이 아닌 온라인 공간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줌으로 만나는 원격수업이 진행되었고, 심지어 온라인 수업은 제시간이 아니어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학교’는 그 존재 가치를 잃게 되는 걸까? 우리는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학교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 대답은 온라인 학습이 가능하니 이제 학교가 필요 없어졌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학습에 가려져 있던 학교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학교의 존재 이유와 공교육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단지 공부만 한 게 아니었다. 학교에서 매일 친구들을 만났고, 어울려 놀았고, 영양 가득한 밥을 먹었다. 학령기가 되면 아이를 자연스럽게 학교에 보내던 학부모들도 학교가 맡았던 역할을 돌아보게 되었다. 학교의 의미와 ‘교육다움’의 가치를,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함께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기초학력 저하와 교육 불평등 심화 코로나19 이후, 기초학력이 떨어졌다는 것에 교육 관련 집단이 이구동성이다. 자본의 격차가 일상생활과 교육에서 안타깝게 대물림이 되어도, 학교와 공교육이 그것을 줄여 주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아이를 직접 돌볼 수 없는 처지의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으로 불평등의 격차를 더 벌여 놓자, 학교는 그 존재를 드러냈다. 기초학력 저하, 저소득층 가정 자녀들의 교육 불평등 심화, 가정의 양육부담 가중 들을 줄일 수 있는 힘, 그것은 바로 학교에 있었다. 갈수록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시대에 교육마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했고, 또 한편으로는 강화했다. 하지만 취약계층 아이들이 출발선에 공정하게 설 수 있도록 국가가 해결해 주는 것, 거기에 공교육이 있다. 결국 교육이 희망이다. 그래서 공교육은 더욱 공고해져야 한다. 학교다움에 대하여 아이들은 학교에서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온전한 개인으로 성장한다. 학교에서 보내는 그 시간은 특정한 아이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다, 예컨대 부유한 아이든 가난한 아이든 모두의 경험이 된다. 배움이 있고, 교사의 사랑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영양 잡힌 밥 한 끼가 있고, 안전한 울타리가 있는 것만도 학교가 있어야 하는 충분한 이유다. 그래서 지금은 학교에 더욱 힘을 실어 주어야 할 때다! 공교육의 다음 걸음이 어디로 가야 할지 규정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미래학교가 가야 할 길을 모두가 고민하고, 공교육에 온전히 기대어 가기 위해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책의 마무리에서 다짐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교사로서 자신이 할 일을 고심하고,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그리고 아이들과 즐겁게 배우고 어울려 잘 놀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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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대안교육에 몸담아 왔던 저자는 2020년 팬데믹 시기에 공교육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비판했던 공교육의 역할을 새롭게 발견한다. 자유학교 ‘물꼬’를 아는 이들은 ‘공교육은 더욱 공고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그가 변했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는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이 중심이다. 그는 교육은 어떤 곳에서 이루어지든 아이들을 온전히 사랑하고 함께 성장하는 일이라 믿는다. 그래서 공교육이 해 왔고 앞으로 해 가야 할 역할에 대해 숙고한다. 팬데믹으로 맞게 된 낯설고 이상한 세상,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 내지 못하는 세상을 보면서도 그는 냉소하거나 체념하는 대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다시 희망을 꿈꾼다. - 김중미 (『괭이부리말 아이들』저자, ‘기찻길 옆 작은학교’의 큰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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