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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Takashi Asahina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Jean Sibelius: Symphony Op.43)
SACD Hybrid
Exton / Exton 202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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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디스크

Disc

  • 01 Sibelius: Symphony No.2 Op.43

아티스트 소개 3

작곡Jean Sibel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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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시벨리우스,Jan Sibelius Johan Julius Christian Sibelius

스웨덴계 핀란드 작곡가이다. 음악 활동을 위해 본명인 요한(Johan) 대신 프랑스식 예명 장(Jean)을 사용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요한 루드비그 루네베리의 시처럼 핀란드의 국민성을 대표한다고 여겨진다. 핀란드의 국민적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핀란드 최대의 작곡가일 뿐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세계적인 작곡가이다. 그의 작품은 현대 음악풍은 아니지만, 애조를 담은 북유럽의 음악다운 특색을 가지고 있다. 요한 율리우스 크리스티안 시벨리우스(Johan Julius Christian Sibelius)는 1865년 당시 러시아령 핀란드 공국에 위치한 해
스웨덴계 핀란드 작곡가이다. 음악 활동을 위해 본명인 요한(Johan) 대신 프랑스식 예명 장(Jean)을 사용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요한 루드비그 루네베리의 시처럼 핀란드의 국민성을 대표한다고 여겨진다. 핀란드의 국민적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핀란드 최대의 작곡가일 뿐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세계적인 작곡가이다. 그의 작품은 현대 음악풍은 아니지만, 애조를 담은 북유럽의 음악다운 특색을 가지고 있다.

요한 율리우스 크리스티안 시벨리우스(Johan Julius Christian Sibelius)는 1865년 당시 러시아령 핀란드 공국에 위치한 해멘린나의 스웨덴계 핀란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족들은 그를 스웨덴어·핀란드어 애칭인 ‘얀네(Janne)’로 불렀지만, 시벨리우스 본인은 프랑스어 이름 ‘장(Jean)’을 썼다. 그의 가족은 그를 핀란드어 학교에 보냈고, 거기에서 그는 펜노만(Fennoman) 운동을 접했다. 그의 음악관과 정치 성향은 국민악파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9살 때 피아노를 배웠고 15살 때 바이올린과 작곡법을 배웠다. 하지만 가족들이 반대하여 1885년에 헬싱키대학 법학과로 진학하였다가 음악을 전공하기 위하여 중퇴하고 당시 음악원 교수로 있던 부조니에게 사사하였다. 졸업 후 베를린과 빈으로 유학을 떠나 노년의 브람스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1892년 헬싱키음악원의 교수가 되었으며 대서사시 <<칼레발라>>에 의한 교향시를 작곡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핀란디아, Valse Triste, 바이올린 협주곡, 카렐리아 모음곡, 투오넬라의 백조(렘민캐이넨 모음곡의 한 악장) 등이 있다. 그 밖에도 그는 칼레발라에 영감을 얻은 작품과 일곱 개의 교향곡, 100개가 넘는 가곡, 13개의 연극을 위한 반주 음악, 하나의 오페라 (Jungfrun i tornet - 미완성작품), 현악 사중주를 포함한 실내악 작품, 피아노 소품, 21개의 합창곡집, 프리메이슨 예배음악 등을 썼다.

시벨리우스는 19세기 말 작곡계의 조류를 일부 받아들였지만 음악의 심층적인 구조를 단순화시키려고 했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안토닌 드보르작처럼 관용적인 멜로디와 점차적인 발전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페루치오 부조니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영향을 받았고, 1891년의 쿨레르보(Kullervo) 교향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그 영향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는 소나타 형식을 거부하고 음악적 단편을 발전시키면서 끝에 장엄한 피날레로 이어지는 구성을 그의 작품에 쓰기 시작했다.

시벨리우스는 조성적인 중심이 있는 음악을 썼다. 그는 길게 이어지는 음 하나(‘페달음’이라 한다.)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화성을 선호했다. 그는 “페달 없는 음악은 종종 길을 잃는다”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복잡하지는 않지만 구스타프 말러와 같은 당대 작곡가들의 존경을 받았다. 후에 그는 Olin Downes의 찬사를 받았지만 Virgil Thomson에게는 비판을 받았다.

1925년 이후로 그는 작은 작품들만을 썼고, 8번 교향곡(9번째)을 썼지만 폐기했다고 했다. 대편성으로 된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는 교향곡 6번과 7번,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위한 반주 음악, 그리고 교향시 《타피올라》등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지나고, 후두암 수술을 받은 뒤 교향곡 8번을 끝으로 30년의 여생 동안 시벨리우스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피했고 작곡에서도 거의 손을 뗐다.

그는 낭만주의 작곡가로서 당대에 서양 고전음악 작곡가로서는 유행에 뒤처진 음악을 썼다. 그의 교향곡은 아직까지도 연주·녹음되고 있으며, 아주 유명한 20세기의 교향곡 작곡가 중 하나로 남았다. 하지만 생전에 그는 더 수입이 많은 실내악과 연극을 위한 음악을 더 많이 썼다. 그의 작품을 옹호하는 사람으로는 사이먼 래틀, 로린 마젤, 데이비드 앨런 밀러 등이 있다.

1958년 맨체스터 가디언 지는 다른 작곡가들이 칵테일을 제조하는 동안 시벨리우스는 차갑고 맑은 물을 제공했다는 평으로 그의 말년 작품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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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나 다카시(朝比奈隆, 일본어: あさひな たかし, 1908년 7월 9일 - 2001년 12월 29일)는 일본의 지휘자이다. 도쿄에서 태어났고, 소년 시절부터 취미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학창 시절에는 실내악 활동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교토 제국대학에 입학해 법률을 전공했고, 1931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열차 기관사나 백화점 사원 등으로 근무했고, 이후 교토 제국대학에 재입학해 1937년에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학교의 아마추어 관현악단에 입단해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악단 지휘자였던 에마누엘 메테르에게 지휘를 배웠다.

1937년에 교토 제국대학 관현악단을 지휘해 비공식 데뷔 연주회를 가졌고, 1940년 1월에 신교향악단(현 NHK 교향악단)을 지휘해 공식 데뷔했다.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 교향악단과 만주국의 국책 악단이었던 신경 교향악단, 하얼빈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일본 패망 후 임원식 등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귀국했고, 1947년 오사카를 본거지로 하는 간사이 교향악단을 창단해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 1950년대에는 유럽 등지에서 객원 지휘자로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 등을 지휘하기도 했다. 1960년 간사이 교향악단이 오사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개칭되면서 음악 감독을 겸했고, 이후 타계할 때까지 그 직책을 유지해 단일 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세계 최장 재임 기록을 갱신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오사카 필과 도쿄 공연을 시작하면서 명성이 점차 높아졌고, 베토벤과 브람스, 브루크너, 차이콥스키 등의 교향곡 음반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오사카 필을 이끌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공연하기도 했고, '독일계 낭만주의 음악에 통달한 일본 지휘자' 라는 이유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관현악 연주회 외에도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바그너의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일본 최초로 상연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베토벤과 브람스,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집 음반들은 해외에도 소개되었다.

1996년에는 시카고 교향악단 단장이었던 헨리 포겔의 초청으로 객원 지휘를 하기도 했고, 1998년 90세가 된 이후에도 계속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세운 현역 최고령 지휘자 기록을 바꿀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건강 악화로 인해 공연 취소 사례가 잦아졌고, 연주회의 기복이나 부침도 컨디션이 불안정한 탓에 더욱 심해졌다. 결국 2001년 10월 24일에 나고야의 아이치현 예술극장에서 열린 오사카 필 초청 공연 직후 건강 악화로 입원했고, 약 2개월 후 고베의 병원에서 93세로 타계했다.

생전에 일본 정부와 음악 단체들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수많은 훈장과 상장을 수여받았고, 구 서독 정부와 오스트리아 정부에서도 대공로 훈장과 1등 십자 훈장이 수여되었다. 아들인 아사히나 지다루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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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간사이 교향악단(Kansai Symphony Orchestra)'로 첫 출발하였다가, 1960년 지금의 '오사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공식 명칭을 변경하였다. 1947년 창단 당시, 아사히나 다카시(Takashi Asahina)가 지휘를 맡아 2001년까지 오사카 필하모닉을 이끌었으며, 그 뒤로 이지 오우에(Eiji Oue, 2003-2014)와 미치요시 이노우에(Michiyoshi Inoue, 2014-)가 상임 지휘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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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매일
2021년 10월 12일
시간/무게/크기
크기확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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