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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작가의 말
006 추천사 │ 최 정 010 순진한 간호사 012 낡은 신발 014 우리 엄마 016 진료비 줄이는 법 022 창덕궁 026 아름다움과 더딤의 노화 032 고추 사건 035 철도파업, 철도민영화 039 내 사랑 안동 044 미국 대사관저 047 대통령과 시위 054 아버지와 세숫대야 056 복권 058 엉덩이가 빠진 칼국수 061 나의 은인 방 신부님 071 간화선이란? 075 세 동창생 078 대학과 지하철역 081 목욕탕 이야기 084 사형수 내 친구가 감옥에서 보내준 100만 원 090 “기 천 불” 094 한 눈으로 보는 세상 098 영수의 크리스마스 달걀 101 대갈통 사건 107 중국 4대 미녀 114 어머니의 두 마음 121 야구선수가 짜 준 카디건 125 세심한 싱글남이 알려주는 빨래 박사 되는 법 130 바보 135 면역력 138 누나와 교복 142 나를 살린 암 147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153 두 남자의 비밀여행 158 연극을 알게 해준 최헌진 과장 164 세 남자의 바람 끼 166 재미있는 세계사 [스페인과 영국의 이기주의] 171 송자 누나 175 학교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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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한번 눈여겨보세요. 주사실, 응급실, 석고붕대실, 처치실 이런 것들이 보이나. 처치실이란, 간호사들이 환자에게 주사나 약을 투약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장소입니다. 보통은 간호사실 내부에 있지요. 링거병에 노란 앰플들을 섞거나 약 봉투를 확인하거나 뭐 그런 일을 하는 장소입니다. 간호사들이 “처치하러 가자!” 라는 말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에게 주사를 놓으러 가자는 말이고. “지금 처치 시간인데요.”라는 말은 병실 환자에게 주사를 놓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처치라는 말이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용되면 엄청나게 무서운 말이 됩니다. 사람이나 동물의 생명을 끊는 것을 “처치한다.” 라고 하지요.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 면허를 받아 처음 출근한 병원의 근무지가 내과 병동이었는데 간호사 18명과 간호조무사 8명이 환자 80명을 봐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전쟁터였지요. 신규 간호사이니 처음 1년간은 주사기 한번 못 만져보고 근무시간 내내 혈압을 재거나 각종 검사물 채취로 시간을 보냈지요.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어느 날 밤 근무 시간이었습니다. 낮 근무나 오후 근무 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기회가 온 것이지요. 평소 저를 예쁘게 봐주던 선배 간호사가 “윤 선생, 오늘은 네가 406호 환자 처치해볼래?”라고 하셨지요. 다시 말하면 저에게 근육주사를 놓을 기회를 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보 같은 저는 그 처치를 서부영화에서의 처치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지요. 그 당시, 406호 환자는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고 의식도 가끔 없어지고 해서 하늘로 갈 날만 기다리던 환자였습니다. 저에게 처치하라는 선배 간호사의 말을 듣고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엉엉 울면서 “선생님 왜 저보고 죽이라는 거예요? 저 사람 못 죽여요. 간호사가 사람도 죽여야 하나요?”
그 뒤 반응은 여러분께 맡깁니다. 제가 이런 간호사였습니다. 하긴 누구에게나 풋풋하고 상큼한 새내기 시절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 「순진한 간호사」 중에서 사람들은 새것을 좋아한다. 새 차, 새집, 하다못해 돈도 새 돈이 좋다. 그런데 새것보다 헌것이 좋은 게 있다. 신발이다. 특히 구두는 적당히 신어서 길이 들여진 조금은 헌것이 최고다. 누구든 새로 구두를 사면 우선은 걱정부터 생긴다. 얼마 전, 청계천 황학동 도깨비시장을 살피다가 예쁜 발목 구두를 하나 발견했다. 색깔도 적당히 바랬고 디자인도 내 마음에 들었고 신어보니 치수도 맞았고, 얼마냐고 물으니 5,000원 주고 가져가란다. 얼른 샀다. 집에 와서 깨끗이 씻어 말렸고 다음날 신고 회사에 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발이 아프고 걸음 걷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그날은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저녁에 집에 와서 신발을 벗으니 발뒤꿈치가 다 벗겨지고 피가 흥건하게 배 나와 있었다. 신발을 다시 씻어 말리고, 발은 삼사일 동안 고생을 했다. 상식을 동원하여 신발 뒤 측에 양초로 문지르고 방망이로 두들기고, 내 발에는 아예 밴드를 붙이고.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다. 디자인이 예뻐서 아침마다 그 신발이 신고 싶었고 신을 때마다 가슴이 덜컹거렸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신발을 신었는데 뒤 측이 아프지도 않고 발이 아주 편했다. 저녁에 벗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지금은 내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신발이 되었다. 신발과 사람 사이에도 이렇듯 적응 기간이 필요할진대 하물며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어떨까? 우리는 잘 기다리지 못한다. 더욱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더하고.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났는데 어떻게 금방 생각이 같을 수 있고 다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신발과 발이 서로 이해하고 맞추어가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조금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적당히 신어서 편해진 신발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편한 신발이 되자. --- 「낡은 신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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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의 글쓰기는 첫 직장인 대전을지병원에 근무하면서였다. 충남 당진으로 무의촌 진료를 다녀온 후, 원보에 기고할 글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스물여섯, 참으로 젊고 발랄한 시기였다. 그 후, 글을 쓰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글공부를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서울시민대학 문창과에서 임동헌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내 글을 좋아해주셨고 격려와 용기도 주셨다. 때로는 매서운 회초리도 함께. 그렇게 선생님과 글공부를 하다 선생님은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하늘나라로 가셨고 나는 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선생님을 잃고 한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다. 글 쓰는 것이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그러다 나 역시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세상과 작별할 날만 기다릴 수 없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냥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우주에 작은 깃털이라도 남기고 싶어 글을 썼다. 외로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싸움에서 이겼고 내 글도 세상으로 나왔다. 내 글은 깊이가 없다. 그냥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되는 편하고 쉬운 글이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딱히 사전을 찾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로 글을 쓰고 싶다. 용상동 가톨릭농민회관에서 만난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그분들처럼 향기 나는 글을 쓰고 싶다. 한 달 내내 자리에 누워 밤낮 노래를 들었다 며칠 뒤에는 고든박골 병실로 옮겨 햇빛 환한 침대에 누워 새소리 바람소리 벌레소리를 듣겠지 아, 내가 멀지 않아 돌아갈 내 본향 아버지 어머니가 기다리는 곳 내 어릴 적 동무들 자라나서 사귄 벗들 모두모두 기다리는 그곳 빛과 노래 가득한 그곳 어느새 반쯤은 그곳에 온 듯싶어 이제 나는 가네 빛을 보고 노래에 실려 ─ 이오덕 「빛과 노래」 먼저 하늘나라에 가 계신 임동헌 선생님과 내 삶의 지표, 농민운동가 권종대 선생님을 기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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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간 시 쓰기에만 몰두한 나에게는 산문 쓰기는 마냥 어렵게만 느껴진다. 시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 나를 최대한 감출 수 있되, 결국은 나의 세계관을 슬쩍 드러내고야 마는 매력이 있다. 내 생각의 한계를 최대한 감출 수 있다. 반면에 산문은 시보다 작가의 생각이 훨씬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한 편이 아니라, 책으로 한 권 묶을 만한 분량이라면 작가의 모습이 바닥까지 훤히 보이게 마련이다.
이번에 윤강 작가의 글을 읽으며 한 사람의 인생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가족 관계나 직업, 특별한 인연이 닿은 사람들 이야기까지 읽다 보면 윤강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내고 올곧게 살아온 이력이 묻어난다. 「진료비 줄이는 법」처럼 실용적인 글들도 있지만, 나는 「어머니의 두 마음」, 「한 눈으로 보는 세상」 같은 작가의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어왔다. 어릴 때부터 백내장이 있었고, 서자庶子인 나는 생모와 떨어져 본처 엄마 손에서 자랐고, 이 와중에 당시엔 드문 남자 간호사라는 직업을 얻게 된다. 장애와 서자, 이것 자체만으로 치명적인 상처였을 텐데 작가는 아주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말이다. 건조할 정도로 무덤덤하게 쓰지 않았다면 자기 객관화가 어려워 감정 과잉 상태의 글이 써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내심 작가의 세밀한 감정 선이 궁금했다. 독자마저 감정을 객관화시키는 무덤덤함보다는 슬픔과 상처의 감성이 절절하게 표현되었다면 더 묵직한 아픔으로 기억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간 일을 덤덤하게 툭 던지듯 내놓은 글도 곧 작가의 성격일 것이다.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자기 객관화가 있었기에 유년 시절의 상처를 딛고 오늘날의 윤강 작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사형수나 병원 환자와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쓴 글들을 보면 작가는 아주 따스한 사람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성격이기에 자신은 예민하게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글이 전체적으로 감정을 누르고 쓴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을 바닥까지 드러내는 일이 두려워 산문 쓰기를 멀리한 나에게 윤강 작가의 글은 새로운 용기를 주었다. 드러내기를 두려워 말고 일단 쓰라, 는 격려로 말이다. 글이란 나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일인데, 아직도 이런 두려움 속에 글을 붙들고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윤강을 품고 키운 곳은 청송이다. 가도 가도, 아무리 둘러 봐도 산밖에 없는 청송 깊은 산골이 어린 그를 키우고 글을 쓰게 만들었다. 티끌 없는 공기와 맑은 물이 풍부한 청송의 자연이 그의 성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너른 들판이 부족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산골은 그를 더욱 강인하게 단련시켰을 것이다. - 최정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