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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박단
1부 근대 이전의 유럽과 메나 01 ‘영원한 로마’ 이념과 유럽 공동체 혹은 유로메나_최혜영 02 721년 툴루즈 전투와 732년 푸아티에 전투_이정민 03 서기 천년 교황의 천문 관측기 아스트롤라베 도입 사례로 본 이슬람 천문학의 유럽 전래_이진현 04 크리스트교와 이슬람의 평화와 공존?_홍용진 05 중세 스페인의 재정복과 무슬림 여성의 섹슈얼리티_서영건 06 제2차 빈 포위 실패, 신성동맹과의 전쟁, 그리고 오스만 사회에서의 후폭풍_이은정 2부 근대 이후 유럽 국가와 메나 07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_이용재 08 유럽과 이집트_송경근 09 이집트 사회주의 지식인 살라마 무사의 서구에 대한 인식_성일광 10 ‘프랑스령 알제리’는 프랑스인가?_박단 11 생시몽주의의 동·서양 문명 화해 담론에 관하여_양재혁 12 유럽 식민 정착민의 알제리주의_김용우 13 영국의 유대국가 건설 기획_홍미정 14 나치 독일-아랍의 반유대주의 동맹을 둘러싼 논쟁_윤용선 3부 유럽연합과 메나 15 제국 상실의 시대, 제국의 대용으로서 유라프리카_김유정 16 EU-MENA의 협력과 공존을 위한 제도화_윤석준 17 EU의 대(對)MENA 협력 제고 전략_심성은 18 시리아 난민 위기를 둘러싼 유럽과 터키의 갈등_장지향 19 유럽연합과 터키의 불편한 동반 관계, 1945년 이후부터 현재까지_신종훈 20 지중해의 유로메나, 키프로스_윤성원 4부 유럽 속의 메나 21 현대 유럽 사회의 무슬림 이민자_오정은 22 교황 프란체스코가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_박현도 23 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문명 교착점, 코르도바 대모스크-성당_이수정 24 헝가리 문화 속의 오스만 문화_김지영 25 아랍 언론의 시각에서 본 유럽 내 이슬라모포비아_김재희 |
朴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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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gang Euro-MENA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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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아랍지역학을 아우른 종합서
균형 잡힌 역사 연구를 위해 유럽과 메나 두 문명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국내 대학 대부분은 여전히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라는 틀 안에 갇혀 있다. 대학뿐만 아니라 학회, 연구소도 마찬가지다. 메나 지역은 서양사, 동양사 어디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을뿐더러 유럽 혹은 동아시아와 함께 다룬 연구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19년 4월 설립되었다. 이 책은 유로메나연구소의 첫 학술대회 결과물이다. 이런 유로메나연구소의 취지에 공감한 많은 연구자가 이 책에 기꺼이 이름을 올렸다. 유럽과 메나 지역 두 문명권의 갈등과 교류에 관심을 가진 국내 학자들의 글을 체계적으로 종합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획기적인 시도다. 이는 지금까지 어느 학술단체도 이루어내지 못한 성과다. 하지만 근대 이전부터 현대까지 두 문명의 역사를 관통하다 보니 시대나 지역에 따라 빈 곳이 생길 수밖에 없다. 두 문명의 역사를 균형 잡힌 연구로 승화시키기에는 메나 지역 연구자가 턱없이 부족한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아랍지역학 등의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빈 부분을 어느 정도 메운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의 구성 이 책은 시대에 따라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계 연구자 25명이 참여했다. 1부 “근대 이전의 유럽과 메나”는 고대 ‘영원한 로마’ 개념에서부터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빈 침공까지를 다룬다. 이 장의 특징은 근대 이전 두 문명권 사이에 다양한 갈등이 존재했지만, 그 못지않게 교류도 활발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있다. 특히 서기 천년의 교황 제르베르의 역할과 제6차 십자군 연구가 근대 이전 크리스트교와 이슬람의 교류와 평화 공존을 잘 보여준다. 2부 “근대 이후 유럽 국가와 메나”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의 유대국가 건설 기획까지를 다룬다. 근대 이전까지 두 문명 간 갈등이 주로 전쟁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져 단기간의 충돌 후 다시 원래의 지역으로 돌아가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면, 근대 이후에는 서구의 메나 지역에 대한 침략이 식민주의 형태를 띰으로써 아랍 세계 점령이 일반화되었다. 심지어 정착민 형태로 유럽인들이 식민지에 거주함으로써 두 문명이 직접 접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메나 지배는 제국주의 침략의 전형으로, 우리가 왜 유럽과 메나를 함께 검토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다. 3부 “유럽연합과 메나”는 그 이전 시대와 달리 유럽과 메나의 관계를 각국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대표성을 갖는 집단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27개 유럽 국가의 연합체인 유럽연합(EU)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 문제뿐만 아니라, 유럽과 메나 지역을 하나의 단일체로 묶으려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유럽과 메나를 별개로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4부 “유럽 속의 메나”는 “메나 속의 유럽”과 짝을 지어 고찰할 필요가 있는 주제지만, 연구자의 한계로 유럽 내 위치한 메나적 요소를 탐구한 장이다. 장기간 이슬람 문명과 교류해온 유럽 내에는 무슬림 이민자뿐만 아니라 메나 지역의 언어, 이슬람의 건축, 심지어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라는 혐오감마저 내재해 있다. 유럽과 메나를 더 이상 별개의 지역, 별개의 문화권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은 이유다. ‘유로메나’라는 명칭의 이중성에 대하여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소장 박단 교수에 따르면, 유럽과 메나를 하나의 문명권으로 파악하면 이 지역의 역사와 문명을 훨씬 종합적이고 거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유로메나연구소’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메나 지역과 함께 살피지 않는 유럽의 역사는 늘 불완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유럽인 역시 다른 차원에서 ‘유로-메나’를 강조해왔다. 특히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화를 살펴보면 유럽인의 메나에 대한 시각을 더욱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뤼시오(Alain Ruscio)는 《백인의 신념(Le credo de l’homme blanc)》에서 서구인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조금도 낯설지 않은 땅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과거에 로마 문명의 빛이 그 땅에서 찬란히 빛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우리는 로마인이다”고 말했다. 이는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말이다. 알제리에 남아 있는 로마의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이는 오늘날의 알제리인에게도 그들 이전에 “이 땅에 로마인(서양인)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유럽과 메나가 정말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관계였을까? 유로메나는 서구인들에게 아프리카 식민화의 정당성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 문명권을 바라보는 데 통합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유로메나라는 명칭의 이런 이중적 관점을 인지하면서, 향후 서구인들의 유럽 중심적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균형 잡힌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유로메나 연구를 넘어 한국과 메나 관계 연구로도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