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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원교
말 없는 붓, 외로운 먹
정강철
문학들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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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붓꽃7|원포園逋12|서결書訣27|백하白下34
묵창墨瘡49|물53|심획心劃61|임서臨書67
언필偃筆 산봉散鋒80|속필俗筆85|순녕사달順寧舍達90
법첩法帖101|강화江華113|진경眞景124|옥동玉洞130
둥그재153|상고당尙古堂169|내도재來道齋191|홍매문紅梅文199
애꾸206|을해지옥乙亥地獄228|도망悼亡244|두남斗南256
남녘 하늘266|부작위不作爲275|적소謫所284|이배移配295
신지도薪智島301|수북壽北312|농필弄筆322
독필禿筆, 닳아 홀린 붓330

해설 유배지에 핀 붓꽃 김영삼338
작가의 말356
참고자료359

저자 소개 1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다. 1987년 <오월문학상>에 「타히티의 신앙」, 198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암행」, 1993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거인의 반쪽 귀」가 당선되어 문단에 이름을 올린 뒤, 줄곧 사회성 짙은 소재와 부조리한 현실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왔다. 국내 최초로 중국 텐진 조선족 삶의 현장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신·열하일기』를 발표했고, 무명 독립영화인의 애환을 담은 『외등은 작고 외롭다』를 《전남일보》에 연재했다. 한국문화예술위 3천만 원 현상공모 당선작 『블라인드 스쿨』을 통해 서로 다른 교육 주체의 다양한 시선으로 오늘날 교육 현실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다. 1987년 <오월문학상>에 「타히티의 신앙」, 198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암행」, 1993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거인의 반쪽 귀」가 당선되어 문단에 이름을 올린 뒤, 줄곧 사회성 짙은 소재와 부조리한 현실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왔다. 국내 최초로 중국 텐진 조선족 삶의 현장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신·열하일기』를 발표했고, 무명 독립영화인의 애환을 담은 『외등은 작고 외롭다』를 《전남일보》에 연재했다. 한국문화예술위 3천만 원 현상공모 당선작 『블라인드 스쿨』을 통해 서로 다른 교육 주체의 다양한 시선으로 오늘날 교육 현실을 들여다봤으며, 「바다가 우는 시간」으로 <목포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수양산 그늘』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바 있고,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으로 출간한 『원교』에서는 조선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를 완성한 명필 이광사의 비극적 삶과 치열한 예술혼을, 집요한 고증과 절제된 문장으로 살려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37년간 모국어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인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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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494g | 145*216*18mm
ISBN13
9791191277227

출판사 리뷰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한 서예가
원교 이광사의 삶과 예술혼을 추적한
정강철 장편소설 『소설 원교』


조선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서예가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 ~1777)의 예술혼과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소설 원교』(문학들)가 출간되었다. 올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기도 하다.
원교는 1775년(영조 31년), 나주 벽서 사건에 연좌되어 친국 끝에 종신유배형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었다가 호남 신지도로 이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죽음을 앞두고 이광사는 되뇌었다.
“서도(書道)는 큰 도인가 작은 도인가.”
붓을 들고 글씨를 쓰는 일이 삶이었기에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생각나고 걱정되는 건 오로지 글씨였다.
소설은 외로움과 진한 먹향이 가득했던 그의 신산한 생애를 추적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서체를 완성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한 외로운 예술가의 혼을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다.

‘세상을 등지고 달아나다’
원교의 가문은 폐족임을 자처했다. 집 안의 정자에는 ‘원포(遠逋)’라는 글자의 목조 편액이 걸려 있었다. ‘세상을 등지고 동산으로 달아나다’라는 의미다. 그의 가문은 조선 제2대 임금 정종의 서얼 왕자였던 덕천군 이후생의 후손으로 왕가의 피가 흘렀고, 이광사의 고조부 이경직은 호조판서를, 그의 부친 이진검은 예조판서를 지냈다. 그럼에도 일족은 권력과 거리를 두고 부귀를 삼가며, 서도(書道)를 추구하면서 양명학의 정신을 가다듬었다.

“무엇에 써먹기 위해 글을 읽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서책을 읽는 데 게을리하지 마라.”
“욕심을 버리면 누구나 태평한 세상을 누릴 수 있다. 우리 집안은 본디 왕족이었고, 명필 가문이니라. 서도를 지킬 것이며 우리 법도대로 살아가면 된다.”

그러나 당쟁의 파장은 집안의 ‘법도’를 단숨에 휩쓸었다. 백부 이진유와 아버지 이진검이 묵숨을 잃었다. 원교에게는 유배령이 내렸다. 함경도 부령에서 7년을, 다시 신지도에서 15년을 살았던 그는 끝내 뭍을 밟지 못했다.

스승 백하 윤순
원교 이광사가 어린 시절부터 글씨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던 건 가문의 운명이자, 그의 숙명이었다. 글씨에 재능을 보이면서 이광사는 백하 윤순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소설의 중반부까지 스승 백하 윤순과의 관계는 예술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스승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 명의 예술가로서 세계관이 완성되어 가는 순간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잘 벼려진 칼날처럼 언제나 날카롭고, 차갑고, 송곳처럼 허술한 부분을 찌르고 들어온다.

-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글씨를 남발하다가, 파지를 주워 모아 저잣거리에 퍼질러 앉아 놋그릇이나 닦고 자빠져 있을 놈.
백하의 언성이 차츰 가라앉았으나 노기를 거둬들인 건 아니었다.
아직도 여차하면 지필묵을 뒤엎고 벼루를 던질 태세였다. 광사가 무릎을 굽히고 스승의 말을 새겼다.

스승의 글씨를 청하는 이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스승은 마침 자리에 없었고, 그들은 스스로를 백하의 제자라 말한 사람의 글씨를 보고 싶어 한다. 마지 못해 이광사는 몇 자를 적었고, 그에 대한 어쭙잖은 평을 나누던 참에 외출했던 스승이 들어왔다.
“이놈이 필경 미친 게로구나. 천한 놈. 점획도 모르고 결구도 터득하지 못한 주제에……. 먹물인지 구정물인지도 가려내지 못한 놈이, 속기에 빠져 남 앞에서 글씨 자랑질을 해? 제 글씨에 스스로 목을 치는 망나니가 되었구나. 개 꼬리 묵혀 둔다고 황모가 된다더냐? 어디, 서도가 눈앞에 어른거리던?”
스승 백하는 겉멋과 허세와 욕심을 나무란 것이었다. 제자의 글씨가 부와 권력의 수단이 되는 걸 경계했다. 그의 집안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동국진체, 조선의 글씨
원교는 엄한 스승의 밑에서 부지런히 자신의 글씨를 갈고 닦는다. ‘임진부작위(任眞不作爲)’, 본래 제 모습에 충실할 뿐 꾸미지 아니한다는 정신을 자신의 글씨와 삶의 원칙으로 삼았다. 스승이 죽을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스승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 글씨의 바탕을 왕희지에게 배우되, 왕희지를 뛰어넘어, 우리 조선을 글씨를 모색해야지. 한 가지 서체에 집착하다 보면 우물 안에 갇히는 편협에 빠질 수도 있을 터, 넓게 보고 멀리 가야 한다. 죽는 날까지 걸어야 할 길이라면.

왕희지를 넘기 위해서는 왕희지를 써야 한다. 임서를 거쳐야 배임이 가능하며, 뜻이 따라와야만 자유로움이 가능해진다. 그것이 스승의 가르침이었다. 인고의 시간을 버티면서 왕희지의 글씨를 따라 쓰고, 또 쓰고, 다시 쓰는 시간. 그 사이에 그의 몸에는 먹향이, 정신에는 외로움이 깃든다. 그리고 스승이 죽고 나서야 그의 글씨는 다음과 같이 평가받는다.

- 장차, 조선을 대표할 글씨라 하셨습니다. 두고두고 지켜보아도 물리지 않는 글씨, 가르치지 않았어도 순연히 내뿜는 분방함이야말로 타고났다 하셨습니다. 왕희지를 익히라 했더니 마침내 왕희지를 뛰어넘는 글씨를 써낸 제자라 하셨습니다.
- 무, 무슨, 말씀을…….
- 조선 최고의 명필, 아버님께서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허무맹랑한 필흥인 줄 알고 광사를 나무랐는데 어찌 된 일인지 놔두고 볼수록 영묘한 감흥이 일렁이게 하는 걸작이라 하셨습니다. 참으로 오묘한 일이라며, 보면 볼수록 진가가 묻어나는 글씨,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조화를 부린 거라며, 저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이 글씨를 진본으로 지키고 가보로 전하라 하셨습니다.

필흥이 너무 솟구친다며 엄하게 단속했던 글씨였다. “봉두난발로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날아다닌 것”(117쪽) 같다며 노여워하던 글씨였다. “새를 그린 것처럼 머리와 꼬리가 날렵하지만, 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멋대로 활개를 쳐서 엇되고 되바라져”(117쪽) 있다던 글씨였다. 아직까지 버릇을 고치지 못했느냐며 질책하던 글씨였다. 그 글씨가 스승의 필함에 간직되어 있었다. “청어람할 수 있는 유일한 제자는 오직 한 사람, 원교 이광사”(127쪽)라는 스승의 전언에 제자는 엎드려 울음을 토했다.
중국의 서체에서 벗어난 서체, 진경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문화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진 18세기에 비로소 피어난 조선의 글씨, 동국진체는 이렇게 윤순 백하의 서법을 계승한 이광사의 손에서 완성된다.

추천평

그의 소설에서는 먹 냄새가 난다. 진경시대 서예를 대표하는 원교 이광사의 삶을 따라 드러나는 웅혼한 필묵흔이 소설 안에 가득 배어 있기 때문일까? ‘사흘은 바람이고 나흘은 비가 오니 솥에다 글을 끓일 수 있나?’ 양식도 땔감도 없이 글만 쓰는 서생으로 부딪혔을 생의 막막함에 앞서 원교의 삶은 그 자체가 비 오고 바람 부는 하마르티아(hamartia)였다. 노론 소론의 권력 싸움 사이에 풍비박산된 가족사와 기나긴 유배 생활을 오로지 지필묵만으로 이겨 낸 한 인간의 행적을 따라 동국진체는 완성된다. 작가는 기박하고 신산한 원교의 삶을 집요하게 벼루 위에 갈아 넣고 유려한 필획으로 휘갈겨 먹처럼 짙어지게 했다. 절정을 향하여 가쁜 숨을 몰아가거나 극적 반전을 감춰둔 채 시치미를 떼는 짜릿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 아니라 여성적 엑스터시를 반복하며 호흡의 높낮이를 유지하는 이 소설은, 작가의 선비 같은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 - 김경주 (화가)
“봉두난발로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날아다닌 것” 같다며 노여워하던 글씨였다. “새를 그린 것처럼 머리와 꼬리가 날렵하지만, 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멋대로 활개를 쳐서 엇되고 되바라져” 있다던 글씨였다. 아직까지 버릇을 고치지 못했느냐며 질책하던 글씨였다. 그 글씨가 스승의 필함에 간직되어 있었다. “청어람할 수 있는 유일한 제자는 오직 한 사람, 원교 이광사”라는 스승의 전언에 제자는 엎드려 울음을 토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한 예술가’의 인고의 정신과 묵향의 정신이 가득 배어 있다. 수많은 자료와 고증을 거쳐 소설적 상상력을 융합해야만 했을 글쓰기의 과정을 생각해 볼 때, 이 ‘한 예술가’가 원교인지 정강철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붓을 가지고 논다는 ‘농필(弄筆)’의 경지를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글에 겸손해진다는 ‘독필(禿筆)’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정강철의 소설을 통해 되새긴다. 몽당붓의 가치를 터득할 때까지 읽고 쓰고 또 읽고 써야 할 일이다. - 김영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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