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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괜찮아둘이 합쳐 종합 병원알루미늄 접이의자배낭 꾸리기기억의 장소작은 사치성당에 초를 켜고옥스퍼드 박물관「함부르크 모르겐포스트」가족 여행숲에서 길을 잃다헨젤과 그레텔와이파이 길 찾기목장 길 트레일창밖의 풍경호텔 창밖하이델베르크의 큰 그림낭만적 윈더미어다락방소떼화가의 아틀리에고흐, “사랑하는 테오에게”세잔, “베르나르, 당신도 화가요?”모네, 백내장 없이 본 지베르니 연못르누아르, 팔목에 붓을 묶고벤치가 있는 자리브레너 고개 바라보는 작은 연못가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헤세도라의 수선화 피는 언덕여전히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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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준비의 하나로 시작한 여행! 고생하려고 떠난 건 결코, 절대, 진짜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개고생만 하다 온 노부부의 심심하고 특별한 유럽 여행기 그래도, 우리의 여행은 계속된다! *잠시 코로나19로 쉬고 있습니다.*퇴직 후에 계속할 수 있는 게 뭘까?부부가 단 둘이 첫 여행을 떠났던 건 2003년이었다. 퇴직 후에도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게 뭘까 찾던 중이었다. 여행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게 실현될 일인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가장 걱정된 건 여행 중 둘이서 다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그때만 해도 호텔을 미리 예약할 수 있는 수단도 마땅치 않아 일일이 현지에서 해결해야 했다. 호텔 잡는 것부터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루어진 게 없다 보니 다투거나 뜻이 맞지 않는다거나 그럴 수 있는 여유조차 사치스러웠다. 어떤 이유로든 첫해 여행에서 한 번도 다투지 않은 건 분명 성공이었다. 두 번째 여행도 그랬다. 세 번째 여행에서 독일 하노버에 머물고 있던 때였다. 하노버에서 베를린은 기차로 두 시간 거리인데, 늦은 오후였지만 마침 그 날치 유레일패스 유효 시간도 넉넉해서 잠깐 다녀올 생각이었다. 객실에는 승객이 없어 조용했다. 대각선 방향으로 몇 줄 앞자리에 일본인으로 보이는 일흔 정도의 노부부가 간편한 차림으로 단정하게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내가 혼잣말처럼, “우리도 나중에 저들처럼 조용히 여행을 할 수 있으려나.” 하고 말했다. 내가 그리던 은퇴 후의 큰 그림이 딱 그런 것이었지만 그냥 무심한 듯 툭 던졌다. - “그래? 그러지, 뭐!”고생한 기억은 생생하게 남지!여행은 쉬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여행’이란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좋은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는 대부분은 고생을 잔뜩 했던 일들이었다. 즐거운 때보다는 애먹은 때가 훨씬 더 많았다. 따뜻하게 햇살이 난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 비가 오거나 바람 부는 날이었다. 여행지에서 가져온 즐거웠던 기억들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지만, 고생을 할수록 그래서 인내하는 시간 끝에 오는 잠시 동안의 좋았던 순간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내와 나는 돌아가면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걸로 주저앉지 않도록 자극해 준 것도, 그걸 이겨내게 한 것도 여행이었다. 돌아보면 세상의 어수선한 일들을 외면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는 모든 일들을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여겨지는 모든 일로부터 멀어지고 싶던 때도 있었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 줄 수 없기에 나를 두르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히 의연하려 했지만 참고 드러내지 않는 걸로 치유될 일이 아니었다. 그런 모든 일들이 쌓여 나도 모르게 안으로 움츠러들고 있었다. 진정 다행이었던 건 여행지에서 만난 여러 예술가들의 이야기에서 동병상련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잔이 꼭 나와 같았을 것 같았고 워즈워스에게서도 그런 공감을 했던 것 같다. 헤르만 헤세는 정확히 우리의 갈 길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소소하게 나를 스쳐 지나간 작은 일들로 나는 힐링되고 있었다.현장 스케치와 함께 읽고 보고~이번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을 몇 점이라도 싣자는 편집자의 제안에 일단 생각만 해보자며 발을 뺀 듯 만 듯 그러다가 결국 여기까지 일이 커졌다. 저자는 “자신도 없고 걱정도 되었다만 뭐 전문 삽화가도 아니고 저자로서 여행담에 어울리는 삽화를 좀 넣는 건데 이 정도면 우사는 아니지 않느냐”고 아내가 추켜 주는 통에 에라 모르겠다며 용기를 내긴 했지만, 아무래도 스스로 감싸온 외투를 훌쩍 벗어버린 것 같아 쑥스러웠다고 한다.그리고 이제는 “영원히 그럴 일이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언제든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서슴없이 크로키를 할 만큼 뻔뻔해지기를 기다려 여행 중 기차에서든 카페에 앉아서든 주변 사람들을 그리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일을 즐겁게 상상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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